『조금도 더 부자가 되지 못한채 또 한해를 보내게 되는가』. 1년동안 돈을 더 벌어 재산에 보탬이 없이 한 살을 헛되게 더 먹는 것을 한탄하면서 스쿠루지는 음산하고 기분 나쁜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는다. 항상 명랑하고 착하기만 한 조카가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축하를 해주지만 스쿠루지는 돈이 되고 이익이 생기지 않는 모든 일에 대해 짜증이 나고 화만 치받칠 뿐이다. 가게 점원이 크리스마스날 하루 휴가를 하겠다고 하자 짜증이 극에 달한 스쿠루지는 일 안하고 돈을 달라는 것은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훔치는 도둑질』이라며 야단을 친다.찰스·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첫 장면은 철저하게 경제적인 인간을 등장시킨다. 돈을 더 벌자는 경제적 동기,재산을 늘리고 더 잘 살아보고자 하는 성취욕과 향상심이 투철한 스쿠루지는 현대적 의미의 경제적 인간상이다. 일 안하는 사람에게 돈을 줄 수 없다며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강조하는 스쿠루지는 경우도 밝아서 도둑질을 하거나 노력 없는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는 단지 인색할 뿐이다. 이해관계에 민감하고 돈에 정직할 뿐이다. 인색하고 이해관계에 밝고 돈을 좋아하는 것은 현대 경제사회 구성원들의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특성이다. 아담·스미스가 밝힌 자유경제체제의 기본적인 작동원리는 이기심이다.
누구나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기만 하면 이 세상은 저절로 조화를 이루어 『훌륭한 세계』로 발전하게 된다. 이기심의 불꽃튀기는 충돌에 의해 경쟁이 일어나고 이 경쟁이 경제의 능률과 효율성을 보장해주게 된다. 아담·스미스의 눈으로 보면 스쿠루지야말로 가장 훌륭한 경제적 인간이다. 현대적 인간상인 것이다. 현대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인간상은 스쿠루지의 초상화다.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도 거리와 골목마다 가득한 것은 스쿠루지의 얼굴이다. 찰스·디킨스는 『크리스마스캐럴』에 스쿠루지를 등장시켜 놓고는 그 초상을 부셔나간다. 유령을 끌어들여 공포와 감동의 체험을 하게 하고는 그 얼굴을 전혀 딴 것으로,반경제적인 것으로 바꾸어 버린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스쿠루지는 전혀 딴 사람이 되어 돈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버리고 돈과 사랑을 베푼다. 경제적 이익이 없는 곳에 돈을 쓰는 것은 경제에 반하는 것이다. 아담·스미스 이론대로라면 이기심이 없어지고 이윤적 동기가 약화되는 것은 경제의 위기다. 경제와 반경제 두 얼굴의 스쿠루지를 제시하면서 찰스·디킨스는 『경제』를 반대하는 쪽으로 독자들을 몰고가서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경제적이면서도 경제적일 수만은 없는,경제만이 전부일 수는 없는 『인간세상』을 말하면서 『베푸는 것』도 경제의 울타리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관심사가 되고 있는 분배의 경제는 학자들이 아니라 찰스·디킨스가 제시한 과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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