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우리 경제는 「총체적 난국」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우리 경제의 견인역을 맡았던 수출은 내리막길을 걷고 국제수지는 적자로 돌아선지 오래며 부동산값을 비롯,각종 물가의 폭등은 실질임금의 감소를 초래,서민들의 가계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해 물가 고용 성장 등을 나타내는 각종 경제지표들은 크게 나빠지고 있지 않아 「지표경제」와 「실물경제」간의 괴리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우리 경제를 보는 시각도 낙관,비관으로 나뉘어 원인과 처방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과연 우리 경제는 「총체적 난국」을 벗어났는가. 관계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본다.◎물가상승 근본적처방 절실/임금보다 부동산폭등부터 잡아야
지금 많은 사람들이 우리경제의 현상황을 매우 우려하면서 우리나라가 현재 경제적 난국에 처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과거 고도성장기에 비해 현재의 우리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생산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업들은 이러한 상황을 피부로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러나 경제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사용되는 물가 고용 성장에 관한 주요 통계지표들은 크게 나빠지고 있지 않다. 물가상승률은 다소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한자리 숫자에 머물러 있으며,실업률도 크게 변동하고 있지는 않으며,성장률 역시 꾸준히 높게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 경제가 난국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를 보는 시각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특히 물가문제에 대해서는 그 심각성이 상당히 높게 인식되고 있으면서도 그 요인을 보는 시각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금년까지는 물가상승률을 억지로라도 한자리숫자에 묶어 둘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년에는 물가상승 압력이 가속화되어 한자리숫자의 유지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특히 연말연시를 기해 제반 공공요금들이 일괄적으로 인상되었다. 그런데 사용자를 대표하면서 실질적으로 우리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재벌들은 임금상승을 물가상승의 주요 요인이라고 부각시키고 있다. 반면에 일반 근로자들은 이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물가상승의 요인에 대해 일반적인 의견일치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데도 정부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기보다 재벌과 마찬가지로 그 원인을 임금상승에 두려고 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러나 물가상승의 주된 요인은 오히려 부동산 가격폭등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론적인 관점에서 볼때 물가상승은 거시적으로는 통화량 증가와 팽창예산에 그 원인이 있으며,미시적으로는 노동비용과 자본비용으로 구성되는 생산비 증가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런데 과거 몇년동안 통화량 증가율과 예산증가율 모두 실질임금률보다 더 높았으며,생산비에 있어서는 노동비용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자본비용이 실질임금률보다 더 높게 상승하였다. 특히 부동산가격 폭등은 그대로 자본비용으로 전가되어 임금인상보다 더 높은 생산비증가 압력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인상에 초점을 맞추어 물가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중립성이 결여된 견해로서 국민적 합의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문제해결의 실마리도 될 수 없다. 이것은 오히려 정부정책을 계속 특정집단에게만 유리하도록 유도하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그리고 물가문제는 물가상승률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물가구조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인데 부동산가격 폭등은 물가구조까지 크게 왜곡시켜 버렸다.
더 나아가 물가구조의 왜곡은 과소비를 부추기면서 산업구조까지 왜곡시키고 있다. 산업구조의 왜곡으로 인하여 산업별로 불균형고용이 나타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업간의 임금구조 역시 크게 왜곡되고 있다. 제조업의 고용비중이 낮아지고 서비스업의 고용비중이 높아진다거나 고졸이하 생산직에서는 노동공급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데 반해 대졸이상 사무직에서는 노동의 과잉공급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 것 등은 근본적으로 임금구조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며,이러한 잘못된 임금구조도 본질적으로는 부동산가격의 폭등으로 인한 산업구조의 왜곡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물가구조는 경제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이 문제의 해결없이는 우리의 당면한 경제문제를 극복할 수가 없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즉 부동산가격문제보다 임금상승문제를 더욱 부각시키는 것과 같은 현재의 접근 방식으로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정부는 어디까지나 중립적 입장에서 공정하게 모든 경제문제에 접근하고 공정하게 모든 경제정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최정표 건국대교수>최정표>
◎수출경쟁력 회복이 관건/정부지원 탈피 기술·경영 혁신을
작년 이맘때쯤 우리 경제는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산업생산 증가가 3%에 못미치고 수출은 5%나 감소하였으며,기업의 투자의욕이 극도로 저조하였던 것이 작년 경제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금년에 들어서는 건축경기가 주도하기는 하였으나 9% 수준의 성장을 이룩하였고 제조업 생산도 3·4분기에는 전년동기에 비하여 9.6% 증가하여 상당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걱정하였던 실업증가는 고사하고 기업들은 극심한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경제난국이 단순히 순환적인 성장둔화와 투자부진을 가리키는 것이었다면 난국이 크게 해소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총체적 난국」이란 진단은 구조적이고 미래투시적인 시각에서 돌파구가 쉽사리 찾아지지 않는 불안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경제의 어려움은 직접적으로 원화의 절상과 과도한 임금상승에 따라 수출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된 데 기인한다. 이를 회복시키는 것은 생산성의 제고와 기술 및 경영의 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임금상승이 생산성 향상을 수반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불행히도 노사분규와 그 후유증으로 나타난 직무태만과 근로기강의 해이는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높은 제품불량률을 초래하였다. 또한 우리 기업들은 그간 기술개발 보다는 정부지원에 의존하여 단기적인 채산성유지와 투기 및 재 「테크」에 열중해 왔다는 비판이 크다. 설상가상으로 해외의 기술보호주의에 직면하여 쉽사리 기술혁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성장만 하면 되었지 왜 제조업과 수출을 살려야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제조업은 교역의 대종을 담당하기 때문에 협소한 국내시장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국제수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제조기술의 향상은 경제 여러 부문에 파급영향을 미친다.
근래 원화의 실질적인 절하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별로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것은 적지않이 우려되고 있다. 광공업의 취업비중도 작년 첫 9개월간 평균 28.4%에서 금년 같은 기간에는 27.2%로 하락하였다. 근로자나 기업가나 할 것없이 힘든 일을 기피하고 눈앞의 「자기 몫」 챙기기와 불로소득 추구에 열을 올릴 때 그 경제에 희망을 걸기는 어렵다.
미래를 더욱 우려하는 시각은 경제를 종래의 경제적 논리로만 풀어가기 어려운 제약이 커졌다는 데서 비롯되는 것같다. 근년의 민주화와 더불어 나타나고 있는 무절제한 욕구와 사회 구석구석에서의 무질서와 근면성의 저하,이러한 무리한 요구와 무질서를 바로잡기 보다는 인기에 영합하여 이를 증폭시키는 성숙되지 못한 정치풍토,이를 극복하는 것은 우리에게 분명히 커다란 도전이다.
물론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제의 어려움에 대한 공통인식과 노사간의 대화노력을 바탕으로 분규가 크게 감소하고 무리한 임금요구도 자제되고 있다. 기업들도 자동화·합리화·고부가가치화를 통하여 기술경쟁력을 제고하려는 자발적인 노력이 돋보이고 있다. 내년에는 페르시아만사태에 따른 고유가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지자제 선거를 포함하여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한바탕의 정치 「시즌」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에 따른 수입인플레 압력과 국민들의 욕구의 홍수를 어떻게 관리하여 공약의 남발과 인플레의 가속화를 막느냐 하는 것이 어려운 숙제이다.
모두가 높은 인플레를 예상하고 그에 맞춰 「자기 몫」을 요구하게 된다면 인플레는 피할 길이 없다. 너나 없이 투기와 불로소득 추구에 급급하여 근로의욕·기업의욕을 잃게 될 것이고,경제의 성장잠재력은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심각한 총체적 난국의 극복 여부는 어떻게 「돈 안드는 깨끗한 선거」로 경제의 주름살을 최소화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남상우 한국개발연구원 부원장>남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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