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하오 세계 4대 통신이 일제히 「초급전(BULLETIN)」으로 보도한 예두아르트·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의 사임소식은 연말 분위기에 들뜬 전세계를 경악케 했다.소련체제 개편의 최대과제인 신연방조약과 경제개혁안을 놓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심각한 내부도전에 직면해 있는 현시점에서 그의 분신과도 같은 셰바르드나제가 전격 사임을 선언한 사실은 너무나도 중대한 사건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신들이 중요한 뉴스를 표시할 때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급전(URGENT)」 대신 「초급전」이란 표현을 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AP·AFP·UPI·로이터 등 세계 4대 통신 중 유독 AP통신만이 셰바르드나제가 사임연설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권한강화에 반대했다고 보도,큰 혼선을 빚게 했다.
이 통신은 독재등장에 항의,사임한다고 밝힌 셰바르드나제가 『의회가 대통령권한 강화를 승인치 말도록 촉구했다』고 보도,마치 그가 고르바초프에 정면 도전한 것처럼 묘사했다.
이 때문에 일부 국내 언론들은 셰바르드나제가 대통령권한 강화조치를 비난했다는 부분을 큰 제목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그의 연설문 요지가 보여주듯 셰바르드나제가 고르바초프를 비난한 대목은 전혀 없었다. 지난 85년부터 고르바초프를 도와 냉전시대에 종식을 가져온 신사고 외교를 주도하고 소련의 정치·경제개혁에도 깊숙히 간여해온 그가 고르바초프를 「배반」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련내 보수파들조차 그의 사임을 고르바초프와 짠 「정치연극」이라고 주장하고 급진개혁파인 옐친도 고르바초프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것으로 단언하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외신이 터무니없는 오보를 한 배경은 셰바르드나제의 사임발표가 너무 기습적으로 이루어졌고 또 그의 연설이 다소 두서없이 진행됐기 때문이라고 호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오보사태는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소련상황을 위기지향적으로 분석하는 데 길들여진 외신보도 행태가 빚은 「필연적 실수」라는 진단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최근 한소 국교수립과 노태우 대통령의 소련방문 등으로 소련변혁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정확히 판단·분석해야 할 처지가 된 우리 입장에서도 이번 오보사태는 깊이 되새겨볼 만할 교훈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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