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연쇄방화(90년 사건과 사람:3)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연쇄방화(90년 사건과 사람:3)

입력
1990.12.23 00:00
0 0

◎수도를 공포로 휘저은 「도깨비불」/사당동선 끝내 사망자/피해주택 세입자 모두 떠나고 흉가 방치/연초 한달새 백23건… 영원한 미제 가능성서울 동작구 사당1동 1408의38 하남수씨(42·회사원)의 2층 양옥집. 연쇄방화 사건이 한창이던 지난 2월17일 새벽 방화로 인해 기어이 사망자까지 발생했던 이곳은 지금 전체 5가구 21명의 세입자가 모두 떠나고 깨진 유리조각들만 어지럽게 널린 흉가로 변했다. 녹슨 철제대문을 들어서면 1·2층의 창유리가 다 깨진채 마룻바닥 등에 타다남은 실크원단과 신문지 더미가 가득하고,외벽은 온통 검게 그을려 있다.

유일하게 화재피해가 없었던 대문옆 가건물에서는 이모씨(31·여)가 남매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11월초 세를 얻어 들어온 이씨는 개를 두마리나 키우면서도 대문이 낡아 철사로 대충 잠가놓고 자는데 『밤만 되면 무섭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들은 당시 상황을 회상하기 싫어했고 하씨 집 지하실에 세들어 살다 뒷집으로 이사한 20통 통장 김종대씨(39·상업)만이 증언을 해주었다. 김씨는 『사당1동 통장 30여명이 5∼6명 1조로 밤10시부터 방범순찰을 했는데 내가 사는 집에서 그런 끔찍한 사건이 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진저리를 쳤다.

그날 상오1시10분께 하씨 집 1층에 세든 조명숙씨(34·여)의 마루에서 치솟은 불길은 1·2층 49평을 전소시켜 5천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내고 2층에서 잠자던 신현갑군(19·신문배달원)의 목숨을 앗아갔다. 4대 독자인 신군은 사건 2개월전부터 신문배달소년 7명과 함께 이곳에서 숙식하며 하오9시까지 석간신문을 판매하고 새벽4시께면 일어나 조간신문을 파는 어려운 생활을 했었다.

배달소년들은 화재사건후 하씨가 인근 여인숙에 마련해 준 임시거처에서 열흘간 생활하다 이웃 동네에 방을 얻어 신문가판을 계속하고 있다.

또 조씨는 남편(37)이 도미니카에 취업차 출국,여종업원 3명과 함께 블라우스 반제품을 만드는 가내공장을 운영하던중 2천1백여만원의 재산을 몽땅 날리고 인근 동네로 이사갔다.

81년에 이 집을 구입,전층을 모두 세주고 송파구 잠실본동 우성아파트에 사는 주인 하씨는 사건이 난뒤 5천5백여만원의 전세금을 세입자들에게 돌려주고 집을 수리하려 했다가 돈이 너무들어 포기한 채 7억원에 팔려고 내놓았으나 흉가라는 인식 때문인지 팔리지 않자 새로 짓기로 했다고 한다.

경찰 집계에 의하면 1월22일부터 2월26일까지 서울시내 전역에서 발생한 연쇄방화 사건은 1백23건. 경찰은 이 「도깨비불」을 정신 이상자의 단순방화로 추정했다가 시내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자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이용한 2명 이상의 조직적 범행이거나 사회불안을 노리는 불순분자의 소행으로 보고 매일 9천여명의 경찰관을 투입했다. 그러나 1년이 다 가도록 단서는 잡히지 않았다.

시민들은 동네마다 자율방범 순찰대를 구성,자구운동에 나섰으며 정부는 군인과 50만명의 민방위대까지 동원,방범순찰을 실시했다.

극성을 부리던 연쇄방화는 사당1동 화재사건을 고비로 수그러 들었다.

사당1동의 황량한 2층 적벽돌 건물만이 당시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을뿐 연쇄방화 사건은 이제 세인의 기억속에서 사라져간다.

그러나 어디엔가 있을 범인들의 시치미뗀 천연덕스러운 표정은 시민들을 몸서리치게 만들고 있다.<고재학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