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지 그루지야공 유혈사태 결정적 대립계기/동구 붕괴·통독 등 용인에 격렬한 비판 받아와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돌연 물러난 것은 군부와의 오랜 알력 때문이었다고 교도(공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셰바르드나제가 사임하기 직전,미국의 유력 두뇌집단인 랜드 연구소가 마련한 보고서를 인용,이같이 밝히고 셰바르드나제는 지난 87년부터 보수파 세력의 핵심인 군부지도층과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해 최근에는 동유럽 제국의 민주화 및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사실상 붕괴와 독일통일을 이유로 군부로부터 격렬한 공격을 받아 왔다고 말했다.
정세보고는 셰바르드나제를 중심으로 한 소련 외교정책 지도부와 군부간의 권력투쟁이 일촉즉발 상태에 이르러 군 지도부는 유럽재래식 전력(CFE) 감축회담 등 주요 군축교섭시 소련군 전력에 관한 정확한 자료를 셰바르드나제에게 넘겨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랜드 보고서는 이어 셰바르드나제는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친밀한 관계 ▲고르비 정권이 출범한 지난 85년 이후 동서교섭 전문가 및 관료기구의 권력강화 ▲국제문제에 대응하는 군사력의 상대적 지위저하 등 3개의 정치적 요소를 토대로 자신의 영향력을 증대시켜 왔으나 그 자신 처음부터 군 지도부와 직접적인 대립은 신중히 피해 왔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87년 후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군부를 장악함에 따라 셰바르드나제는 군사비 지출 삭감에 저항하는 군 지도층을 점차 비판하기 시작했고 88년에는 소련의 군사정책과 군 지도층의 비밀주의를 공공연히 들추어 공격하기에 이르렀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민족문제에 온건입장을 취한 셰바르드나제는 89년 4월 자신의 출신지인 그루지야공화국 수도 트빌리시에서 일어난 군부대와 주민간의 유혈충돌 사건을 계기로 군부와 결정적인 대립관계에 돌입했다고 랜드 보고서는 밝혔다.
이 정세보고는 또 권력투쟁의 와중에서 동유럽 제국의 민주화를 용인하고 동서독의 통일을 실현시킨 외무장관의 개인적 책임을 군부가 신랄히 추궁함으로써 결국 소련의 외교정책은 국내정치 정세에 크게 좌우되는 상황에 도달하게 됐다고 분석했다.<동경=연합>동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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