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폐막된 예산국회에서 주한미군 고용인 인건비 5천만달러를 다루는 과정에서 관계부처와 주한 미국대사관,그리고 민자당이 보인 태도는 한편의 「웃지못할 소극」을 보는 기분이다.당초 국방부는 주한미군의 한국인 노무자 인건비를 한국 정부가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의 「주한미군 지위협정」(SOFA) 개정안이 가까운 시일안에 양국간에 확정될 것이라는 전제에서 5천만달러(약3백75억원)의 예산을 계상,국회에 제출했던 것 같다.
그러나 평민당측은 『국회의 비준동의도 받지 않은 협정을 근거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전액 삭제를 요구했다. 이종구 국방장관도 그 요구의 타당성을 인정했음인지 15일 국회 예결위에서 『국회 동의를 얻지 않아 위헌소지가 있으므로 제외시키겠다』고 밝혔다.
헌법 제56조는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을 체결할 때에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위헌주장이 옳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로써 이 문제는 일단락 되는가 했더니 이튿날인 16일 도널드·그레그 주한미국 대사가 느닷없이 최호중 외무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외무부가 국회와 긴밀히 협의해 이 예산을 원안대로 통과시켜 줄 것』을 요청함으로써 일은 묘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그레그 대사는 『현 협정상으로는 한국 정부가 이 급료를 지급하게 되어 있지 않지만 워싱턴 당국에 확인한 결과 한국측의 노무자 인건비 부담을 명기한 협정개정안이 수일내로 서명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편지를 통해 한국 정부와 국회에 알려온 것이다. 그러나 그레그 대사의 이 편지는 내정간섭이라는 비판을 일부로부터 받아야 했다. 더구나 이 편지는 그레그 대사가 자진해서 보낸 것이 아니라 외무부의 은근한 요청에 의한 것으로 드러나 일은 아주 고약하게 꼬여 버렸다.
외무부는 그 개정안이 한미간에 곧 서명된다는 것을 국회에 상기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미국 대사관에 편지를 보내주도록 요청한 모양이나 결과적으로는 일부의 비판대로 내정간섭을 자초한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에 당황한 외무부가 『주재국 대사로서 한 미 양국간 현안에 대해 견해를 밝히는 것은 자연스런 외교활동의 일환이며 따라서 그레그 대사가 예산삭감 결정의 재고를 요청한 사실은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옹호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소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예결위의 마지막 심의과정에 클라이맥스를 장식했다. 헌법위반이라고 판명되었으면 전액 삭감이 당연하고 위헌이 아니라면 원안 통과가 당연할 것 같은데 결과는 5천만달러 전액의 생사가 아니라 2천만달러의 절충통과로 나타난 것이다.
외무부의 요청에 의해 외무부로 보내진 그레그 대사의 편지 덕분이나(민자당이 내세운) 한미 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전적인 위헌이 아니라 「5분의 2의 위헌」만 인정한다는 의미인지 정말 희귀한 예산심의 결과를 낳은 셈이다.
양국이 서명한 뒤 내년 임시국회에서 동의안과 함께 처리해도 될 것을 너무 서둘다보니 국방부 외무부 미국 대사관 민자당 국회예결위가 모두 한꺼번에 망신한 꼴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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