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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상표들의 선동」/곽수일 서울대 경영대교수(경제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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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상표들의 선동」/곽수일 서울대 경영대교수(경제진단)

입력
1990.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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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과점 유지·국내시장 치중 등 폐단 커얼마전 어느 외국 경제지에 세계의 10대 상표가 조사·발표된 적이 있다. 이는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을 대상으로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상표가 무엇인가를 조사한 것이다. 이 조사결과에 의하면 국가별로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10대 상표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주로 섬유와 자동차업종에서 뽑힌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들 10대 상표들을 보면 자동차분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우리나라에 이미 도입되어 우리 시장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것들이다. 즉 언제부터인지 외국에서도 사치품으로 꼽히는 이들 유명상표의 제품들이 우리의 소비생활이 고급화하고 다양화되는 과정에서 우리 소비자들에게도 선호되는 상표가 된 것이다. 사실 이들 외국의 유명상표가 붙어 있으면 우리 소비자들은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하여 비싼 값을 주고라도 이들을 구매하는 관습이 생긴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요즘 같은 연말연시나 크리스마스에 서로의 정을 나누기 위하여 작은 선물이라도 장만하는 것을 보면,일반적으로 제품의 내용이나 품질보다는 유명상표만을 찾고 같은 값이면 TV에 광고된 유명메이커의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소비행태로 인하여 최근 우리경제에는 일종의 「상표들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즉 외국의 유명상표를 도입하여 손쉽게 시장에서 인정을 받거나 아니면 자체상표를 개발하여 막대한 광고비를 투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기업으로서는 유명상표를 선호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해야 하므로 로열티를 내든 광고비를 지불하든 유명상표가 되어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소비패턴이 다양해짐에 따라 상표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는 것도 상표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한 예로 라면이나 과자의 경우 제품수명의 단축으로 인하여 기업은 새로운 상표를 계속하여 창출해 내는 동시에 과거 상표에 투자한 돈은 그 상표가 사라지면서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의 상표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즉 유명상표의 제품가격에는 생산비용 뿐만 아니라 상표의 이미지 구축에 들어간 광고비용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소비자가 구입하는 유명상표 제품이 실제로 좋은 제품일지도 모르지만 유명상표일수록 그 제품의 생산원가의 몇배나 되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런 경제현상은 다음의 두가지 측면에서 그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상표들의 전쟁은 단순히 소비자가 유명상표를 선호하기 때문이 아니고 사실은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대기업의 전형적 판매전략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대기업들이 발전초기부터 독과점에서 출발하여 일찌감치 시장을 선점하여 놓고는 타기업의 진출을 막기 위하여 막대한 광고비용을 투자하여 상표의 성벽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기업은 이들 업종에 진출하려면 먼저 상표의 장벽을 뚫어야 하는데 도저히 생산비용에 비해 엄청난 광고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으므로 스스로 진입을 포기하게 되고 대기업은 기존의 독과점을 유지하기 위하여 계속 상표의 장벽을 쌓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다.

둘째,이런 상표들의 전쟁이 지나치게 국내시장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상표들의 전쟁은 세계가 통신과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하나의 경제이며 하나의 시장이 됨에 따라 국내시장보다 오히려 세계시장에서 그 중요성이 증대된다 하겠다.

그러나 최근 어느 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해외에서 인지도나 신뢰도를 구축하고 있는 우리 기업의 상표는 극히 드물고,이에 따라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외국 유명제품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크게 뒤떨어져 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이 이제까지 독과점 상태에 있는 손쉬운 국내시장이나 해외 구매자 상표부착을 통한 수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 우리기업의 국제경쟁 전략의 측면에서 심각한 약점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상표들의 전쟁은 유명상표로 소비자들을 현혹하면서 이미 우리 소비문화에 깊숙히 침투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 소비자들은 허황된 상표에 끌리기 보다는 제품의 내용과 실속을 생각하는 현명함을 보여야 한다. 또한 우리 기업도 지나치게 외국의 유명상표에 의존하여 사치성을 유행시키기 보다는 국내든 해외든 진실한 자기 상표를 확립하는데 노력을 쏟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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