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대국 유지」 페만서 안간힘/미국의 자존심 건 강경책 일관/“냉전후 질서 판가름” 이목집중/세기적 영웅·전화에 몰린 대통령 갈림길에 놓여미국은 미 소 냉전체제에서 승리,지금 세계에 남은 유일한 초강대국이 됐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미국의 국력은 냉전의 절정기보다 쇠잔,절대우위를 상실하고 상대적 우위만을 견지하는데 진력하게 됐다. 일 독일이 미국의 경제우위를 위협하고 있고 92년으로 예정된 EC 경제통합은 미국에 불안의 미지수가 되고 있다. 정치·군사적으로도 중국·인도·인도네시아·이라크·남아공·나이지리아 등의 지역 강대국이 대두하고 있다. 미국이 대소 냉전체제에서 승리했다고는 하나 이러한 힘의 분화 또는 다극화현상으로 전리품은 불분명한 상태다.
미국은 뚜렷한 승리의 보상이 없이 냉전체제의 붕괴에 따른 새로운 질서의 정립이라는 부담만을 안게된 것이다. 미국에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간에 세계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세기적인 국제질서의 전환기에 이 리더십을 제공토록 운명지어진 것이 조지·부시 미 대통령이다. 과연 그가 2차대전시의 영 재상 윈스턴 처칠경처럼 역사적 소명을 완수할 수 있는 「세기의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린든·존슨 대통령처럼 국지전에 물려 단임 대통령으로 끝날 것인가.
지난 8월2일 쿠웨이트를 기습 점령해버린 이라크 대통령 사담·후세인은 부시에 대해 오판이든 아니든 중대도전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은 중동의 기름밭에 일찍부터 깊이 개입해 왔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기름 같은 중요자원을 어느 한 세력에 독점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었다. 근년에 들어서는 카터 대통령이 중동의 유류수송의 자유를 방해하는 경우 무력개입하겠다고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극명하게 표명했다. 이러한 카터독트린이 이란이라크전쟁중 레이건 행정부아래에서 쿠웨이트 유조선에 미국기를 게양케하고 미국 함정의 엄호아래 페르시아만을 통행토록 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에 거의 즉각적으로 강력한 제동을 걸었다. 이라크에 대해 ▲즉각적인 무조건 철군 ▲쿠웨이트 합법정권의 복귀 ▲인질석방 ▲미국시민 안전보장 등을 요구했다. 유엔을 통한 외교·경제제재를 단행했다. 지난 11월말에는 내년 1월15일 이후 무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유엔안보리의 무력사용 승인 결의안까지 얻어놓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20만 추가 증원조치를 단행,페만 주둔 미군 병력을 43만명으로 증강시킬 계획인데 내년 1월말이나 2월 초순까지는 증원이 완료될 것으로 관측된다. 또한 영·불·이집트·시리아 등도 미국의 요청에 따라 파병,10만명선에 접근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군까지 합하면 미군 및 그 연합군 병력은 2월까지는 60여만명에 이른다. 병력의 규모도 월남전 이후 최대 파병규모일뿐 아니라 군장비는 육·해·공 장비가 초현대적이다.
부시 대통령은 사담·후세인을 「중동의 히틀러」라고 처음부터 혹평했다. 후세인을 자기국민(쿠르드족)에게도 독가스를 사용한 「잔인하고 위험스러운 인물」이라고 비난하면서 최근에는 점령지 쿠웨이트에서의 이라크군의 고문·강간·살인 등 집단 인권침해를 강력히 규탄했다.
부시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의 무력사용 승인 결의안이 채택된직후 이라크에 외무장관·대통령간의 교환면담을 제의했다. 타리크·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이 워싱턴을 방문,부시 대통령과 면담하고 그뒤 제임스·베이커 국무장관이 바그다드를 찾아 후세인 대통령과 면담한다는 것이다. 이라크가 이 제의를 수락,곧 회담이 이루어질 것 같더니 베이커 국무와 후세인 대통령의 회담날짜를 놓고 양측이 대립 현 시점에서는 면담이 보류되고 있다. 유엔안보리의 무력사용 승인 결의안의 무력사용 허용 개시일인 내년 1월15일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세계의 눈은 부시 대통령에 온통 쏠리고 있다.
그가 정말로 공격의 명령을 내릴 것인가. 지도력,비전,결단력의 문제다. 또한 성패는 냉전체제 이후의 새로운 세계질서 운영문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견된다.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신과 영향력이 걸려있다. 미국으로서는 질 수 없는 모험이다. 이라크의 후세인으로서는 모든 것을 다건 사활의 게임이다.
조시·부시 대통령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자로 나섰던 지난 88년초,미국의 매스컴들은 하나같이 그를 가리켜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양반」「샌님」「비전 없는 현실주의자」 등으로 지칭,대통령감으로서는 부족한 면이 많다고 지적했었다.
그러나 「샌님」「양반」 운운은 그의 이전투구식의 선거전으로 사라졌고 특히 대통령 당선후 파나마 침공작전을 명령하고 이것이 성공한 뒤에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대통령으로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러나 최근 대의회 예산협상에서 우왕좌왕하는등 「비전 없는 현실주의자」라는 이미지는 씻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기득계층의 정치인이다. 미국에서 정착역사가 가장 오랜지역의 하나인 매사추세츠주 밀튼에서 지난 24년 코네티컷주 상원의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2차대전 당시에는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전후(48년) 예일대를 졸업했다.
그후 텍사스주에 정착,기름사업에 종사하다 이어 하원의원(66년)으로 정계에 투신한다. 그러나 상원의원 도전에 실패(70년)한 뒤 관계로 돌아 유엔대사,주중대사,CIA국장 등 요직을 순회했고 80년 이후 8년동안 레이건 행정부 아래에서 부통령으로서 대권의 꿈을 키웠다.
이처럼 정상으로의 입신과정에서 역사에 남는 업적이 없다는 점에서 「비전없는 현실주의자」라는 평을 받고 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주인이 된 이후 타고난 친화력을 정상외교에 활용,페만사태 후엔 신속히 범세계적 반이라크 전선을 형성하는 등 놀라운 외교적 업적을 쌓았다. 그가 브리핑맨십(전쟁일보전의 외교)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는지,그는 지금 최대의 시험을 바로 이순간에 치르고 있는 중이다.<워싱턴=이재승특파원>워싱턴=이재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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