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농부아들… 8개국어 능통/군부독재 저항 수차례 암살 모면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아이티의 새 대통령으로 당선된 장·베르트랑·아리스티드 신부(37)는 못사는 이나라에서도 가난한 계층인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빈민구제와 반독재투쟁으로 일관해온 로마 가톨릭 해방신학 사제.
53년 아이티 남부 포르살뤼에서 출생한 후 도미니카 이스라엘 이집트 영국 캐나다 그리스 등에서 신학과 심리학을 공부,6개 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고 8개 국어를 읽을줄 안다.
82년 사제서품을 받은 이후에는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빈민가에서 어린이들 특히 고아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헌신해 왔다. 가난한자들을 위한 현실투쟁을 표방하는 해방신학자이면서도 정치에 거리를 두고 있던 그가 정치전면에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
86년엔 29년째 아이티를 족벌통치하던 「베이비 독」 장·클로드·뒤발리에 정권의 부패를 탄핵하는 목숨을 건 연설을 통해 「뒤발리에가」 축출혁명에 불을 댕겼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는 뒤발리에가의 비밀경찰조직 잔당인 「통통마쿠트」(도깨비)의 제1테러 목표로 지목돼 생사의 고비를 숱하게 넘겼으며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88년엔 교단으로부터 신부직 수행 정지명령을 받았다.
그의 정책골자는 독재잔재 일소와 부의 근본적인 재분배. 그는 선거기간 동안 격렬한 정치구호를 배제하고 부드러운 말씨에 속담과 비유를 적절히 섞은 대중연설을 통해 이른바 「라발라스」(산사태 또는 대홍수의 뜻)로 표현된 개혁을 주장했다. 처음 도시빈민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라발라스」라는 구호가 이후 시장의 상인들 중산층 사이에서도 회자될 만큼 그의 개혁주장은 급속히 지지기반을 넓혀갔지만 이에 비례해 아이티 GNP의 40%를 차지하는 1% 기득계층의 반감도 강화된 것이 그의 앞날에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경제계 군부 심지어 종교계에서도 아리스티드 신부를 「호메이니와 카스트로를 합친 공산주의」로 매도하고 있다. 『티티드(아리스티드의 애칭)와 함께라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 우리는 곧 부자가 될 것이다』라는 아이티 국민들의 종교적 신비주의도 그에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김현수기자>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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