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비 첫 접촉서 북 “받겠다” 수락/재미목사 통해 LA서 첫 제의/비밀 샐까 동경→북경→홍콩서 회동 서명/심야 부산서 선적… 수송비 전액 남이 부담/북 대표 “이번 일 씨앗 교류 깊어지길” 사의지난 6월29일 상오 11시(현지시간) 홍콩 구룡반도에 위치한 조선금강산국제무역개발회사 홍콩지사 회의실. 민간차원의 남북교류에 새로운 전기가 될 중요한 모임이 남북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진이 걸린 회의실 전면에는 「사랑의 쌀을 북조선동포에게 전달」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있었다. 상오 11시 양측 관계자들은 「사랑의 쌀 전달합의서」에 차례로 서명하고 선하증권이 북측에 전달됐다.
한국일보사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부설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본부가 지난 3월1일부터 전개한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이 국내 구호차원을 뛰어넘어 인도주의에 입각한 남북교류로 결실을 거둔 순간이었다.
○47개 컨테이너에 실어
같은 시각 부산항에서는 89년산 일반미 최상품 1만가마(8백톤·8억3천만원 상당)가 40㎏들이 2만부대에 나눠져 47개 대형 컨테이너에 선적되고 있었다.
사랑의 쌀이 북한동포에게 전달되기까지는 동경북경홍콩을 축으로 한 운동본부의 두 달 동안의 노력과 정성이 기울여졌다. 또 한국일보사의 적극적 후원,북한당국의 비정치적 수용태도와 호의가 열매를 거두게 했다.
운동본부는 4월24일 북한동포에게 사랑의 쌀을 전달하기 위해 민간인단체인 한국기독교남북교류추진협의회(회장 유상렬 장로)에 북한과의 접촉을 요청했다.
남북 기독교 교류와 북한 선교가 목적인 협의회는 미국 LA에서 활동중인 이광덕 목사(66)를 중개인으로 북한측과 접촉을 시도했다. 북한방문 경험이 있고 LA에서 재미고려문화센터를 경영하면서 남북한 기독교 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이 목사는 북한의 대외무역창구 중 하나인 조선금강산국제무역개발회사에 우리측 의사를 전달했다.
한달여 만인 5월31일 일본 동경의 아다미소호텔에서 금강산무역회사 총사장인 재미동포 박경윤씨(55·여)와 이 목사,남북기독교추진협의회 유 회장이 처음 대면했다.
미국 국적인 박씨는 평양에 본사를,홍콩 북경 등에 지사를 갖고 있는 사업가.
○홍콩남포간 북이 수송
북측은 이날 모임에서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을 이미 보도를 통해 알고 있다고 말하고 정치적 목적이 배제된 민간차원에서 이뤄지는만큼 쌀을 받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양측은 쌀 1만가마를 북한의 광산촌과 어촌주민들에게 전달하고 수송은 한국에서 홍콩까지는 남측이,홍콩에서 남포까지는 북측이 책임지되 수송경비는 남측이 전액 부담키로 합의했다.
제2차 회동은 6월16일 북경에 있는 금강산국제무역개발회사 지사에서 열려 동경 합의사항을 재확인했다.
운동본부는 성금으로 쌀을 구입하면서 같은달 29일 처음으로 북측 대표들과 홍콩의 금강산개발 지사에서 대면하고 전달합의서에 서명했다.
이 자리에는 북측에서 박 총사장과 박종근 사장,남측에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부회장 이성택 목사,총무 한명수 목사,운동본부장 박세직씨를 대리한 운동본부 사무처장 김경래 장로,한국기독교평신도단체협의회장 정연탁 장로,기독교남북교류추진협의회장 유상렬 장로가 참석했고 LA의 이광덕 목사가 입회했다.
○“수해 때 준 쌀 답례”
남측을 대표한 이성택 목사는 『84년 귀측이 수해를 당한 남한동포에게 쌀 5만석을 구호품으로 보내준 데 대한 답례로 여기고 북한동포들에게 잘 전달해주길 바란다』고 인사했다.
북측 대표 박 총사장은 『북남간의 신뢰와 대화가 필요하다』며 『이번 일이 씨앗이 되어 북남교류가 깊어지길 바란다』면서 감사를 표했다.
사랑의 쌀 전달합의서에 양측의 전달관계자들이 서명한 후 합의서 1통과 선하증권을 북측에 전달했다.
사랑의 쌀을 북한에 보내기 위한 노력은 극비리에 진행됐다. 북경의 2차회담이 끝난 직후인 6월24일부터 전국 7개 지역의 정미소에서는 밤을 새워 도정했다.
쌀은 최상급인 89년산 일반벼로 이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농협중앙회가 쌀값을 10% 할인해주었다. 각 정미소에서 7백∼1천가마씩 컨테이너에 실린 쌀은 27일 한밤중 부산항에 집결됐다. 대기중인 미 선적 유에스라이너호(2만8천톤급) 주변에는 일절 접근이 금지된 채 심야에 47개 대형 컨테이너에 선적됐다.
○회담 때 “밥맛 좋더라”
운동본부는 쌀부대 속에 「사랑의 쌀」 취지문도 넣었다.
쌀을 실은 배는 7월3일 새벽 부산항을 출발,기상관계로 대만에 잠시 기항했다가 10일 홍콩에 도착했다. 북한측은 13일 쌀을 인수,북한 선박에 옮겨 실었는데 20일께 출항한 것으로 전해졌다. 쌀은 27일 남포항에 도착,31일께 하역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초 중개역을 맡은 LA교포 이 목사는 북한에 들어가 쌀이 북한주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확인하고 사진 등 증빙자료를 가져오기로 돼 있었으나 북한당국의 거부로 입북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평양에서 열린 2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측 관계자는 사석에서 『쌀의 질이 좋아 밥맛이 좋았다는 얘기가 있더라』고 쌀을 받은 사실을 간접 확인해주었다.<한기봉 기자>한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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