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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면 전쟁다워야…/박승평(아침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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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면 전쟁다워야…/박승평(아침조망)

입력
1990.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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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문화의 잔재가 아직도 자주 거론되는 우리나라이다. 어느 교수는 근저에서 오늘의 우리사회를 「전투사회」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정부가 범죄를 소탕하면서 내건 표제도 「범죄전쟁」이었다.막강한 국가공권력이 의당 수행해야 할 일의 하나인 범죄를 다스리면서 전쟁이란 용어마저 쓰기에 이른 현실이 여러모로 누구에게나 당혹스럽다. 아예 그같은 엄청난 용어를 쓰지 말았으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왕 전쟁을 선포했을 바에야 총력전인 현대전답게 화끈하게 수행하고 볼 일이고,전술·전략도 지혜롭고 합당하게 펼쳐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전쟁이나 전략·전술하면 동양에서는 고래로 손자병법이요,서양에서는 지금도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아닐까 한다.

『적을 알고 자기를 알면 백번 싸워 위태롭지 않다』는 손자의 「지피지기전략」은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 클라우제비츠의 『적의 중심에 전력을 집중해야 전쟁에서 이긴다』는 「중심강타전략」도 오늘날 군사학의 기초상식이다. 그런데 오늘의 범죄전쟁을 이같은 전략에 비추어보면 어떨까 싶다. 그러면 전쟁수행의 문제점도 좀 쉽사리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먼저 지피지기 전략으로 한번 따져보자. 범죄를 다스리는 당국은 과연 전쟁의 적인 범죄집단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던가. 알고도 모른체 했는진 모르지만 최근의 드러난 사례로는 그런것 같지가 않다.

범죄전쟁기간중에 당국이 조직범죄나 조직폭력단의 두목급들을 잡겠다면서 이미 구속·수감중인 자들마저 수배서에 포함시켰다가 황급히 고치는 촌극을 빚었다고 한다. 또 이미 알게 모르게 소문이 나있는 진짜 암흑가의 대부들은 명단에서 왜 빠져있느냐는 소리도 없는게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아군이 될 자기진영에 관해서는 똑소리나게 평소부터 부단히 파악하며 그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아왔던 것일까. 그런데 폭력두목 비호사건으로 들통난 권·폭유착과 판·검·폭의 술자리합석소란,기습단속의 사전정보누출,전과누락 등은 도대체 무슨 소리들인지 모르겠다.

또 평소의 단련으로 정병을 만들어 두었으면 하찮은 적들의 협박이나 모략에도 의연해야 하고 한솥밥 식구들을 태산같이 믿어야 하는게 도리인데 서둘러 공권력에 대한 정면도전설마저 흘리며 방벽을 쌓고 있고 한편끼리간에도 불편한 심기가 노출되고 있다는 보도는 왜 나오는 것인지 국민들은 두루 궁금하기만 한 것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략은 승리로 가는 핵심이 걸린 적의 중심을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두가지로 나눈다.

그리고 전쟁의 양태에 따라 그 중심은 한가지이거나 복합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앞서 미 공군 참모총장 듀간이 중동전쟁 승리의 요체는 이라크의 침략자 후세인을 표적삼아 강타하는 것이라는 중심전략을 발설했다가 경솔한 아군전략 노출혐의로 파면됐던 것을 보면 클라우제비츠의 전략은 지금도 전쟁에서는 금과옥조인 모양이다.

그래서 범죄전쟁도 이 전략에 한번 비추어보면 어떨까한다. 먼저 범죄나 폭력조직의 중심으로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조직을 이끄는 대부나 우두머리의 존재가 될 것이다. 이들 존재의 말살이 조직와해를초래할 것임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목을 잡아내어도 조직이 건재할 경우에는 차라리 진짜 중심은 범죄조직의 돈줄과 바탕이 되는 변태영업 유흥업소나 빠찡꼬업계가 될 수도 있고,범죄조직을 필요로 하는 배후비호세력이 될 것인데 이들도 모두 손이 가야할 미결의 과제들이다.

눈에 보이지않는 범죄의 중심으로는 단속을 아랑곳않는 범죄인들의 어긋난 보상심리나 범죄를 유발하는 황금만능사상과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한탕주의풍조도 꼽힐만 하다. 이럴 경우에는 총력전의 전개없이 가시적인 중심제거만으로는 범죄전쟁에서의 승리는 장담할 수가 없게되는 것이다.

이렇게 전술·전략적으로 한번 따져보면 범죄전쟁은 사실 거창한 표제만 내걸거나 무조건 잡아내라고 채근하는 것만으로는 쉽사리 이기고 발본색원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죽하면 범죄가 인류역사 이래 오늘에까지 쉴새없이 이르렀을까 생각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범죄도 범죄나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범죄전쟁은 당장 국민이나 공권력을 우습게아는 가장 악랄한 표본적 범죄라도 우선 뿌리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릿발같은 국민적 합의가 이 전쟁의 배경에 깔려있음을 당국은 뼈에 사무치게 새겨둘 필요가 절실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까운 것이다.

진짜 전장에서는 유착과 비호의 이적죄를 저지르거나 적과 내통하는 첩자는 누구나 즉결처분대상이 된다. 또 전쟁수행중에 적의 교란행위에 깜짝 깜짝 놀라거나 변명의 방벽을 쌓고,적전분열에 휘말려서는 승리는 물건너가고,국민적 신망마저 잃어 총력전도 물거품이 되고말까봐 걱정스러운 오늘이다.

기왕의 범죄전쟁을 거창하게 선포했으면 이번 전쟁을 전략·전술에 맞추어 철두철미 펼쳐 달라는게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이다. 공연히 실수를 연발하고 치부나 드러내어 국민들을 들뜨게 할 바에야 차라리 전쟁선포를 않는 것만 못하다.

전쟁이면 전쟁다워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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