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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레닌그라드서 방소결산 기자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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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레닌그라드서 방소결산 기자간담회

입력
1990.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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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가장 큰 장애물 제거”/소에 북과 우호유지하며 설득 당부/내가 하려는 얘기 「고」가 먼저… 부탁 필요없을 정도/경협에 무상 있을수 없어… 소비재 중심 연불검토○통일의 길 한 발 접근

노태우 대통령은 16일 상오(현지시간) 소련내 두 번째 방문지인 레닌그라드시의 영빈관에서 약 1시간 동안 수행기자들과 소련방문을 결산하는 간담회를 갖고 방소 성과 및 앞으로의 한소 관계발전 등에 관해 설명했다. 다음은 노 대통령의 기자간담회 일문일답 요지.

­이번 소련방문을 결산해주십시오. 한소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라고 한다면 해방 이후 45년간 한반도에서 지속돼온 냉전체제의 해소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냉전체제로 인해 수백만의 민족이 희생당하는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일어나고 지금도 그같은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 냉전체제의 상대국 「대표국가」 또는 「힘의 원천국가」의 실체와 냉전체제의 종식에 합의하고 상호협력체제를 갖추게 됐습니다.

한반도에서 평화정착을 위한 가장 탄탄한 디딤돌을 마련했으며 이제 평화의 길을 향해가는 데 장애요소는 없어졌습니다. 앞으로 중국과도 관계를 정립한다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협은 100% 해소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온갖 대가를 지불해온 통일의 길이 한층 쉽게 열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이번 소련방문의 가장 큰 성과가 되겠지요』

○「고」에 친근감 느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단독회담을 2시간 이상 진행했는데 여기서 주로 한반도문제를 얘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통일여건 조성과 관련해 주요한 논의가 있었습니까.

『물론 있었습니다. 그분(고르바초프)에게 우리의 통일정책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고 준비를 했었는데 그가 고맙게도 내가 하려는 얘기를 먼저 정리해서 얘기를 하더군요. 이점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인식했던 원칙에서 소련이 앞으로 얼마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였고 그점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북한도 주권국가인만큼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소련이 우리와 수교했더라도 북한과의 관계를 끊지 말고 더 친숙한 관계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역사의 물줄기를 거슬러가고 있는 점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북한이 반대하고 있는 것을 그냥 두지 말고 계속 설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통일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해력도 빠르고 문제의 핵심을 즉각 파악해 짧은 시간이지만 핵심에 어긋나는 일이 없이 매우 유익하고 좋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를 다했고 듣고 싶은 얘기를 다 들었습니다. 마치 수십 년 간 만나온 것 같은 친근감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느꼈습니다』

○시간가면 북도 변화

­북한이나 북한지도층에 대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인식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북한이 페레스트로이카정책 등을 반대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현재 국내문제가 어려워 여타문제에 크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북한도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도 없으며 시간이 가면 반드시 변할 것입니다. 정상회담에서 인물 하나하나에 대해 좋다 나쁘다 서로 논의하지는 않았습니다』

­남북한 유엔 가입문제에 대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의견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논의가 없었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 동안 국제사회에서 이바지해온 우리의 업적,모든 국제기구와의 관계로 보아 유엔에 가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이같은 보편타당성의 원칙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나와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남북한이 함께 유엔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서로 확인했습니다』

­최호중 외무장관과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6·25전쟁과 KAL기 격추사건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셰바르드나제 장관의 발언을 소련정부의 공식사과로 간주할 수 있습니까.

『소련 외무장관의 입장표명이 있었으면 공식적인 뜻이 있었다고 봐야지요.(이렇게 운을 뗀 노 대통령은 배석한 최 장관에게 「그렇지요」라고 묻자 「그렇습니다」고 답변) 그러나 정상회담에서는 6·25와 KAL기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고 개괄적으로만 언급했습니다. 내가 모스크바로 오는데 10시간이 걸렸지만 사실상 86년이 걸렸다는 뜻이 담긴 얘기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충분히 이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를 실감하고 있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말만의 군축은 안돼

­남북한 정상회담에 대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어떤 의견을 교환했습니까.

『이 문제는 샌프란시스코정상회담 때부터 논의했으며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노력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할 것으로 봅니다』

­남북한간의 긴장은 소련이 북한에 대해 최신무기 등을 지원함으로써 고조됐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이를 지적하고 북한에 대해 영향력 행사문제를 제기했습니까.

『북한의 군사력이 우리보다 높고 북의 군비증대는 소련의 지원이 컸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남북한의 군사력이 서로 균형되게 하자면 지금까지 지원을 해주었던 나라들이 군비축소 문제에도 관여해 합동으로 확인하는 장치를 만드는 등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말만의 군비축소는 안 됩니다.

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7·4공동성명 발표 이후 북한이 약속을 깬 사실을 하나하나 설명했고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소련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전혀 이의없이 동의했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내년 봄 서울을 방문하게 되면 평양도 동시에 방문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의식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동맹국인데도 아직 한번도 북한을 방문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북한이 끈질기게 반대해도 나와 정상회담을 갖고 또 수고도 했습니다.

소련이 북한을 의식은 하겠지만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또 소련의 국익을 위해 무엇이 더 도움이 될 것인가는 스스로 판단하리라고 봅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나의 방한 초청에 빠른 시일 안에 서울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한국과의 관계증진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자신합니다』

○임양 석방 검토없어

­모스크바대 연설이나 외무성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임수경양 석방문제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신 것을 보면 석방을 고려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석방을 검토한 적이 없습니다. 모스크바대 연설과 기자회견 때 대학생과 젊은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는데 「같은 학생의 입장에서 동정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법이 있고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한 것이고 어떤 특정인이라고 해서 차별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했습니다.

그러나 임양이 법을 어겨 제재를 받고 있지만 아직 어린 학생이고 법을 어긴 사람이 반성하고 개과천선하면 용서를 고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쭉 그렇게 해오지 않았습니까.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형무소에 있는 사람도 우리 국민이니 대통령인 내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고·옐친은 서로 이해

­우리가 소련에 무상으로 경협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협력의 규모는 정해졌습니까.

『무상이라니 될 법이나 한 소리입니까. 소련 같은 대국이 우리나라와 같은 작은 나라가 무상으로 준다고 해도 안받을 것입니다. 또 한가지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경협규모는 이번에 정하지 않았습니다.

경제협력의 기본방향을 정하려고 소련대표단을 방한토록 했지만 국내사정이 바빠서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못했습니다. 내년 1월초에 협의,결정할 것입니다. 다만 소련이 제일 급한 것이 소비재인만큼 연불로 내줄 수 있습니다.

생활필수품을 생산하기 위해 군수산업을 민수산업으로 전환시키는 데 우리 기술진이 조사해보니 빨리 할 수 있다고 해서 합작투자 플랜트수출,도로·항만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우리 기업이 참여하는 문제를 얘기했습니다. 소련은 88 서울올림픽을 보고 한국처럼 어려운 여건에 있는 나라가 어떻게 해서 단기간에 그토록 엄청난 발전을 했는지 나름대로 연구해서 한국의 발전을 그들의 모델로 선택한 것 같습니다. 소련이 좀 춥기는 하지만 기술과 인력이 충분한만큼 경제협력의 여건은 매우 좋다고 봅니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 말씀해주십시오.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사이가 안 좋 다해서 만나는 것 자체가 델리키트하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정책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었으며 다만 여러 소련내 공화국에 자주권을 더 달라는 입장인 것 같았습니다.

러시아공화국이 그 중 가장 큰 공화국으로서 요구가 많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연방의 헌법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원칙은 분명했습니다. 가능하면 공화국 주권을 무시하는 독립적인 행위는 상상할 수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더군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정책에 대해 이견이 없느냐고 묻자 그런 것은 없고 원칙에 찬성하지만 다만 좀빨리 하자든가 하는 방법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러시아공화국이 우리나라와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문화협정,인적·기술교류 그리고 경협 등을 추진하자고 제의한 데 대해 연방의 법절차에 따라 하겠느냐고 묻자 연방국의 법과 절차에 따라 하겠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귀국하시면 이번 방소 결과를 정리하고 필요한 후속조치를 어떻게 해나갈 계획이십니까.

『방소 결과를 확인 정리하고 필요한 지침을 내릴 것이 있으면 내리고 또 국무회의 등을 열어 필요한 조치를 논의해 취해나갈 생각입니다』

○김대중 총재 만날 기회

­귀국하시면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회담을 가질 계획이 있습니까.

『그런 기회가 오지 않겠어요. 오리라고 봅니다』

­개각문제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각 등 정부요직 개편문제에 관해 구상한 것이 있습니까.

『대외문제를 머리 속에서 정리하고 있는 중이라 개각이니 그런 것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겨를이 생기시면,개각을 고려할 생각이신지요.

『정리 다하고,국내에 가서 겨를이 생기면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본·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에 대한 관심이 어떻다고 보십니까.

『상당히 적극적이었습니다. 나와 호크 호주 수상의 주도로 만들어진 APEC(아시아·태평양각료회의)의 구성과정에 대해 잘알고 있었고 관심을 표명하면서 참여를 희망했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이같은 의사표시에 대해 나는 장기적으로 그렇게 돼야 하고 될 것으로 보지만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 조건은 한반도의 안전보장체제의 구축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지난 88년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제의한 동북아 6개국 평화협의회 구성도 한반도문제를 풀자는 것이었습니다. 동북아와 아태지역의 평화협력 번영을 약속하는 핵심은 한반도문제이고 이것이 원활히 해결돼야 한미,미일 등의 쌍무조약들을 정치적으로 한단계 높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입니다』<레닌그라드=이종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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