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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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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0.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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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6월24일 소련은 서베를린을 봉쇄했다. 동독내에 외딴섬처럼 들어 앉은 베를린의 서쪽 부분은 외부와 연결되는 도로,철도,수로 등이 막혀 당장 시민들의 식량,연료,약품 등의 공급에 문제가 생겼다. 미국과 영국은 26일부터 항공기들을 동원하여 서베를린 시민들의 각종 생활필수품을 계속 실어 날랐다. 훗날 이 일은 「베를린 공수」로 불리게 됐다. ◆2차대전 직후였던 그 당시 서부독일과 서베를린을 점령하고 있던 미·영·프랑스 연합국이 점령지역의 통화개혁을 실시하자 동부 독일과 동베를린을 점령하고 있던 소련은 점령지역의 통화가 위협당한다고 판단하고 보복조치로 서베를린을 봉쇄한 것이다. 미소 냉전이 본격화 하던 때여서 소련의 봉쇄와 그에 대응한 서방측의 공수는 세계의 긴장을 높였다. ◆봉쇄는 49년 9월30일에야 해제됐고 그때까지 연합국이 항공기로 운반한 각종 생필품은 도합 1백58만3천6백86톤에 달했고 이 장기간의 공동수송에 소요된 경비는 1억7천만달러에 이르렀다. 비록 생필품이 공급되기는 했어도 이 기간중 서베를린 시민들은 물자부족으로 상당한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이일은 그들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번에 소련이 식량난을 겪게되자 각국은 소련에 식량을 원조하러 나섰고 독일도 이에 가담했다. 독일 공군은 우선 60톤의 식량을 18,19일 이틀에 걸쳐 베를린으로부터 모스크바 동북쪽 약 2백50㎞ 거리에 있는 이바노보시로 공수키로 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성격이 전혀 다른 또 하나의 「베르린 공수」에서 우리는 역사의 한 아이러니를 본다. ◆당초 독일측이 식량 공수를 제의했을 때 소련은 독일의 군대가 소련땅에 발을 들여놓는 일은 2차대전 때 「나치독일군의 침략」 기억을 되살린다해서 거절했다가 사정이 급해서인지 결국 수락했다고도 한다. 「베를린 공수」가 지니는 양면성을 보면서 역사에도 어떤 의지가 있는가를 생각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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