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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0.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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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3월 19일은 독일 분단사상 역사적인 날이었다. 빌리·브란트 서독 총리 일행이 동서독 총리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열차편으로 분계선을 넘어 빌리·슈토프 동독 총리의 영접을 받으며 에르푸르트역에 도착한 것이다. ◆이날 상·하오에 걸쳐 10여시간 동안 진행된 첫 회담에서 서독은 이산가족 왕래,경제교류 및 협력,전화·전신·철도운행의 개통 등을,동독은 상호 내정불간섭,무력사용 포기,국제법상 동독승인,유엔 동시가입,핵무기 철거와 군비 50% 감축 등을 제기했으나 양측은 상대방 제의를 거부했다. 특히 동독은 베를린장벽 구축 전에 서독으로 3백여 만 명이 탈출함으로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며 2백72억달러의 배상을 요구하여 서독을 어리둥절케 했다. ◆두 달 뒤 서독 카젤의 슈로즈호텔에서 2차 총리회담이 열렸다. 여기서 서독은 자유왕래 등 20개항을 제기한 반면 동독은 국가승인 등 1차 때의 주장을 되풀이했고 양측은 상대방 안을 모두 거부했다. 신통하게도 두 차례 회담에서 단 한 건의 합의도 없었으나 어느 쪽도 상대방을 비방하지 않고 화기 속에 회의를 진행시켜 당시 한 외신은 「마치 한 국가 안의 주대표회담과 같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아무튼 양측은 공개적인,거동이 요란한 총리회담으로는 진전이 없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각료급 실무협상을 갖기로 했다. 이로부터 양독의 내각관방 장관 격인 서독의 에곤·바르와 동독의 미카엘·콜은 동·서독을 왕래하며 비밀접촉을 통해 동독 승인,주권존중,내정불간섭,인적·물적교류 등에 합의했고,72년 11월에는 훗날 통독의 바탕이 된 「기본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제3차 남북한 총리회담이 아무런 합의도 없이 또다시 빈손으로 끝났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우리의 북방정책에 대해 「구걸행각」 「사대외교」라는 식으로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외교적 예의는 일찌감치 던져 버린 것이다. 특히 당국간의 공식회담중에 대남교란을 위해 재야·학생들과 접촉을 기도하는 북한과 정상적인 대화를 갖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럴수록 남쪽은 인내를 갖고 북한을 설득,20여 년 전의 양독 협상을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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