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얼굴의 원형은 어떤 모습인가. 고고 인류학자들은 지구상에 현존하는 겨레의 얼굴형태를 타원형 원형 네모형 등 모두 10가지로 분류하고 한겨레는 90%가 달걀형,역달걀형이며 나머지 10%가 다섯모형이라고 말한다.그러나 학계의 이 통설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얼굴은 주위환경과 영양상태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오늘날 한국인의 얼굴은 원형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체로 요즘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얼굴은 달걀형,역달걀형이 아니라 모진 구석이 별로 없이 둥글어진형이 아닌가 싶다. 특히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영양상태가 향상됨에 따라 살이 찐 한국인들은 피부확장효과에 의해 전반적으로 얼굴색깔이 엷어지고 과거보다는 윤기가 나며 곱고 부드럽다는 느낌을 준다. 깡마르고 광대뼈가 튀어나와 눈만 반짝이는 얼굴은 이제 거의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둥근 얼굴이 복스럽고 원만하며 관인후덕한 장자의 얼굴은 아직 아니다. 볼이나 턱에 두툼하게 붙은 살은 탐욕이나 심술,가식과 무신경,몰염치,무기력의 새로운 피부로 보이곤 한다.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부조화의 밀가루 반죽이나 펑퍼짐한 밀가루부대를 연상시킨다. TV에서 자주 보게되는 사회 각 부문 지도층인사들의 얼굴은 살이 쪘는데도 어느 한 구석이 빈 것 같고 의지의 긴장과 매듭이 없는 듯한 부족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다.
얼굴의 형태나 체격이 달라짐으로써 가장 곤란해진 것은 영화 TV 드라마 등인 것 같다. 가령 「남부군」같은 영화나 「몽실언니」따위의 TV 연속극에 나오는 배우들의 얼굴은 너무 둥글고 살이 쪄 있어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이나 곤궁·빈한한 시대의 인간상을 재현해내기가 처음부터 어렵다. 60년대에 상영된 「석가모니」라는 영화에서 이미 신영균은 너무 살쪄 있었기 때문에 고행하는 실달다의 역할에 맞지 않았었다.
5·16직후 국민들 앞에 나타난 얼굴은 깡마르고 길쭉한 모습이었으며 눈에 살기를 띠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 경제개발이 시작되고 가난에서 벗어나면서 우리의 얼굴은 점점 둥글어지고 펑퍼짐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한국인의 얼굴에는 안일과 자기방기의 피부가 너무 많다. 못먹고 못입던 시절이나 권위주의시대로 되돌아 갈 수는 없으며 또 그래서도 안되지만 목표가 없는 것 같은 몽롱한 얼굴들을 보노라면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인간의 정서를 정직하게 드러내줄 수 있는 최소한의 피부만으로 이루어진 정련된 얼굴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요즘 서울에 많이 왔던 이북사람들의 얼굴을 보노라니 우리의 얼굴은 이북사람들과도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남북의 얼굴도 합쳐서 평균 내어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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