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세계의 고래잡이는 단연 미국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차츰 미국의 고래잡이 어업은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땅 속에서 기름을 퍼올리면서 고래기름에 대한 수요가 줄고,노르웨이의 선진 고래잡이 기술이 미국의 선단을 밀어냈다. 이때 러시아가 재빨리 노르웨이의 고래잡이 기술을 도입했다. 선전 고래잡이 기술을 갖춘 러시아는 극동에도 나타났다. ◆19세기말 러시아는 고래가 들끊던 조선왕국 동쪽의 동해에서 거의 독점적으로 재미를 봤다. 러시아의 포경선단은 동해의 고래를 긁어모으듯 잡아갔다. 1896년 고종임금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소위 「아관파천」 때 러시아의 세력은 전성기에 이르렀다. 이범진·이완용 등의 친로파가 정부를 구성,러시아는 함경도에서 벌채권·채광권 등 이권을 따냈다. ◆한국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온 민영익은 1883년 『특히 러시아의 강대함에 놀랐다』고 말했었다. 『조만간 러시아가 아시아로 침략의 손을 뻗쳐 우리나라에도 그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관파천」은 그로부터 13년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원래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그만큼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열강이다. ◆서울의 광화문거리에 소련의 붉은 국기가 걸리고,모스크바공항에 우리의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전후 남북분단과 6·25의 처참한 전쟁을 통해 적대관계에 서온 한국과 소련이 화해와 친교의 손을 내민 순간이다. 독일 통일이 유럽에서 냉전이 끝났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면,모스크바공항에서 애국가가 울린 것은 동북아에서도 냉전청산이 시작됐다는 신호다. ◆19세기말과 지금은 러시아나 우리 자신이나 판이하게 다르다. 소련은 지금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화의 모험에 나섰고,우리도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1백년 전의 조선과는 다르다. 그러면서도 한반도는 지금 19세기말의 고전적인 「열강외교」 시대와 비슷한 모습을 띠어가고 있다. 허세 부리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외교를 펴나가야겠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