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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식량난 실체/강병태 베를린 특파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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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식량난 실체/강병태 베를린 특파원(기자의 눈)

입력
1990.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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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위기」에 관한 보도들이 춤을 추고 있다.겨울철에 들어서면서부터 모스크바 등 대도시가 기근 직전에 있다는 기사가 쏟아지는가 하면 『국영상점엔 없어도,각 가정에는 식량이 쌓여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기근과 내전 우려 때문에 최고 수천만 명의 소련난민이 유럽으로 밀려올 것이란 「말세론」과 같은 보도에 『터무니없는 과장』이란 반박이 뒤따른다.

개혁의 부작용이 피크에 달한 올 겨울,소련의 대도시들은 식량조달이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서방언론의 보도가 국익과 이념적 정향,정부정책 등에 따라 저마다 다른 톤과 색깔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련의 「위기」를 가장 대대적으로 전파하고 있는 것은 고르바초프 개혁에 가장 호의적이고 낙관적인 독일언론들이다. 그러나 독일언론은 이와 함께 정부의 대소 지원정책에 발맞춰 실로 역사상 유례가 드문 거국적인 지원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반면 다른 유럽언론들은 「위기론」의 뉴스가치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대체로 방관적이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과거 소련의 「위기설」을 앞장서 만들어내던 미국언론들이 이번에는 「위기설」을 부정하는 보도에 적잖이 열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뉴욕 타임스지는 『소련의 국영상점은 식료품의 주공급원이 아니다. 소련인들은 과거부터 주로 직장과 암시장,개인루트 등을 통해 식량 등 생필품을 확보해왔고,위기설이 난무하는 올 겨울 모스크바 각 가정에는 오히려 예년보다 많은 식량이 비축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미국계의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지는 『대량 난민설도 소련당국자들이 서방의 지원을 얻기 위한 「협박용」으로 과장하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 두 기사는 모두 진상의 핵심에 접근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과거 냉전시대의 미국언론은 『소련공산체제는 국민을 굶기고 있다』는 반소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텅 빈 모스크바 국영상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묘사해왔다.

언론학자들은 이를 소련의 비자본주의적 유통체계를 무시한,왜곡된 「냉전형 보도」의 전형으로 비판했었다. 그런데 지금 미국정부가 내심 대소 지원을 꺼리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언론은 자신들의 과거 「반소 주제」의 허구성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도 아랑곳없이 「위기」의 부재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아이러니는 서방언론들이 그토록 외쳐온 「냉전종식」에도 불구하고,「국익 우선보도」에는 큰 변화가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서방언론에 의존하고 과신하는 한국언론들이 되씹어보아야 할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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