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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자 공무원 특채/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 교수(정치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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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자 공무원 특채/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 교수(정치진단)

입력
1990.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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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휴 두뇌 활용·관료제 활력의 방편몇년전만 해도 외국에 유학중인 제자가 학업을 마쳤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쁘고 경하하는 마음뿐이었는데,요즈음은 또 한명의 고등실업자가 늘게 되었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국내외에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고급두뇌들을 수용하기에는 우선 대학의 문이 너무 좁고,각종 연구소나 기업체들도 아직은 힘이 크게 부친다. 그러다 보니 이들 귀한 인재들이 적재적소에서 일하지 못하고 유휴인력으로 몇년씩이나 방황하기가 일쑤이다. 개인적으로도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거니와 나라 전체로 볼 때도 국력손실이 엄청난 것이어서 이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정책적 대응이 요구된지 이미 오래다.

박사학위를 소지한 고급인력의 수급차질 상황은 많은 이가 상상하는 바를 초월한다. 분야마다 차이가 크지만 사화과학 분야의 경우,단 한명 뽑겠다는 교수공채 공고에 국내외 박사 10여명,많을 때는 수십명이 몰리는게 이젠 예사이다.

세계적으로 명망있는 대학출신들도 사정이 여의치 못하기는 마찬가지이고,이제 누구도 대학의 자리를 구하는데 있어 서울이나 지방을 가릴 처지가 못된다. 그들중 적지 않은 이가 학계를 지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점차 많은 이가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터라면 굳이 대학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태껏 제시된 이들 고급인력의 수용방안은 대체로 권장사항들이어서 그 실행력에 한계가 있다. 예컨대 대학의 강사 의존도를 낮추고 전임 교원수를 늘리는 방안도 사립대학의 극심한 재정난을 감안한다면 성사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국공립대학교나 국책연구소의 경우,정부의 의지가 뚜렷하다면 전임 교원이나 연구권의 수를 일정수준까지 높이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성싶다. 공적 부문에서의 정부의 이러한 선도적 노력은 또한 사적 부문에도 긍정적 충격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서는 이들 빼어난 고급인력들을 적극적으로 사회에 수용하는 방안의 하나로서 5급공무원 특채 가능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 방안은 무엇보다 정부 관료제의 활성화라는 맥락에서 단순한 인력수용의 차원을 넘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함축한다.

주지되듯이 현대정부는 국민의 삶의 모든 부문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거대한 권력기구이다. 따라서 정부관료제는 실로 다양한 영역의 전공자를 비교적 다량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 정부의 전문화,국제화 추세는 관료적 타성에 물들지 않고 국제적 안목과 감각을 갖춘 전문직 고급인력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국내외에서 배출된 유능한 박사학위 소지자들중 필요한 인력을 가려 뽑아 이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이는 국가발전을 위해서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현재 유능한 젊은이들이 고급공무원으로 충원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경로는 행정고시나 기술고시에 합격하는 일이다. 행정고시의 경우 일반행정·재경·사회행정 등 몇분야로 나뉘어 시험을 부과하여 합격한 경우 일정기간의 연수와 수습을 거쳐 5급 공무원으로 충원된다. 치열한 경쟁과정에서 선발된 인재들이기에 대체로 이들의 능력이나 자질은 의심할 바가 없으나,역시 이들은 전문가라기 보다는 일반행정가로서의 바탕을 지닌 재목들이다. 물론 이들중 적지 않은 수가 정부조직내의 엘리트 공무원으로서 장기간 정책업무를 다루고 중·단기의 해외연수를 거치면서 점차 유능한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한편 이들은 새로운 충격이 없는 경우 계층적·권위적이며 경직화된 관료기구의 틀속에서 창의성과 전문성을 키우기보다 자칫 권위의식에 짙게 물들고 타성과 관행에 묶여버린 관료주의의 전형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정부관료제에 박사학위를 소지한 고급두뇌가 유입되면 마치 새롭고 신선한 피의 주입처럼 관료제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선 고시출신의 엘리트 공무원과 새로 유입된 전문두뇌간의 선의의 경쟁이 벌어질 것이 예견된다. 직업공무원으로서의 뚜렷한 동기와 빼어난 자질을 갖춘 고시출신과 고도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갖춘 박사출신들간의 선의의 경쟁은 이들 상호간의 장단점을 보완하고 아울러 관료제에 활력과 유연성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새로운 접근은 현재의 폐쇄적 한국관료제를 개방체제로 바꿔놓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박사학위 소지자를 정부관료제로 충원하는 경우,그 적정비율,충원부서,그리고 충원직급들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그 숫자가 기존의 고급공무원 충원체제를 본질적으로 흔들어 놓아서는 안되며,일단 초기에는 그 충원부서를 고도의 전문성 내지 국제성을 요구하는 부서에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 이들을 5급 공무원으로 충원하되 박사학위 이수기간에 상응하는 일정연한의 경력을 인정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최근 국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연령이 점차 내려앉아 대체로 30전후한 나이에 어엿한 박사가 되는 예가 많다.

따라서 일정경력을 인정해주는 경우 연령상으로 고시출신자들과 균형이 크게 어긋나지 않으리라고 본다. 혹 각고면려끝에 박사학위를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5급공무원 충원이 웬말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정부 관료제의 기본 골격과 속성으로 볼 때 그 이상으로 직급을 올리기는 어려우리라 본다. 또한 5급으로 충원되는 경우 공직사회의 구조와 기능,생리와 문화를 제대로 익히면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므로 관료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적절한 직급이라고 생각된다. 이들은 일단 그 전문성을 바탕으로 충원되나 보다 본질적으로 공무원의 직분을 다 해야할 존재들이므로 공직문화에 적응하는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새로운 피의 주입은 조직내에 얼마간의 갈등을 야기시킬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모든 조직은 얼마간의 내적 갈등과 긴장속에서 성장과 발전을 기약한다.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두뇌들이 국민의 공복으로서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것도 뜻있는 일이거니와,그들의 유입이 한국관료제의 생명력과 정책능력을 키우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을 바르게 관리하는 일이 정치의 요체라면 박사학위 소지자들의 공무원 특채문제는 정책적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해야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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