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하는 부자들 때문에 과소비가 일어난다고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고 있다. 정부관계자들도 상당수가 그런 생각들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쏟아져 나오는 시책들 속에 그런 사고경향이 엿뵈고 있다. 일반적인 사회여론도 부자들을 집중 성토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사치하는』부자들을 밤낮으로 비난하다 보니까 『모든』부자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모든 부자들이 공격받고 비난을 받는 사회에서는 자유경제체제가 제대로 발전될 수 없다. 냉정하게 원칙을 말한다면 돈쓰는 것은 자유다.돈 쓰는 자유가 없는 사회가 자유주의와 시장원리에 의한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는 없다. 돈 쓰는데 도덕적 원칙이 강요돼서는 안된다. 법으로 허용되지 않는 데 돈을 쓰는 것은 다른 모든 위법행위와 마찬가지로 범법으로 다스리면 그만이다. 돈 쓰는데 대한 도덕적 비난과 범법행위는 서로 별개의 것이며 명백히 구분돼야 한다. 도덕으로 경제를 다스리겠다는 것은 자유경제 이외의 어떤 것을 하겠다는 위험한 생각이 될 수 밖에 없다. 돈 버는 것도 마찬가지다. 법을 어기지 않는 모든 돈벌이는 비난 받아서는 안된다.
경제에 도덕을 개입시키고 도덕의 논리로 경제의 논리를 억압할 때 경제의 흐름은 왜곡되고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 밖에 없으며 소련과 동구가 체제를 허물어가며 도입하고자 애쓰는 시장경제의 효율성이 죽을 수 밖에 없게 된다. 경제는 경제의 논리로 풀어야 한다. 도덕의 논리를 들이대서는 안된다. 과소비가 경제적 현상이 분명하다면 이 역시 경제의 논리로 해결해야 한다. 도덕적 비난은 옳지도 않고 효과도 없으며 공연한 위화감의 조성이나 경제논리의 마비 같은 부작용만 유발시킬 뿐이다.
우리 사회는 경제에 대해,돈에 대해 좀더 솔직하고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 시장경제의 핵심은 경쟁이고 경쟁은 차별을 낳는다. 경쟁의 룰을 어기는데 대한 규제는 법과 제도로 보장돼 있고 『시장의 실패자들』에 대한 사회적 보장도 제도적 틀이 그 나름대로 마련돼 있으므로 그 틀과 규칙아래서 4천만 국민 모두가 아무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돈을 벌고 쓸수 있어야 된다. 축구장에서 다른 선수의 공을 채가는 선수는 『유능한』 선수일뿐 『비난 받아야할』 선수는 아니다. 반칙에 대한 레퍼리의 휘슬 하나로 모든 불만과 불평이 승복될 수 있는 사회라야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
살벌한 경쟁은 자유경제의 본질이다.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 과소비는 스스로 경쟁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게 돼있다. 낭비하면서 경쟁에 살아남을 수는 없다. 과소비는 그 원천인 불로소득이 경쟁의 대상밖에서 『보호』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응분의 과세』라는 경제적 처방 하나로 족하다. 배 아픈데 감기약 먹는식으로 도덕적 비난이라는 엉뚱한 처방을 자꾸하는 것은 진짜 약효가 있는 경제적 처방을 소홀히 한다는 징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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