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메지에르 전총리 협조 혐의 드러나/“업무관계 접촉… 죄인취급 말라” 항변/「청산」보다 민족화합 해 소지도동독의 마지막 총리 로타르·드메지에르가 악명 높은 비밀경찰 슈타시(STASI)의 협조자였음을 시사하는 증거가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드메지에르의 슈타시 관련 사실은 지난주 슈타시기록 조사위원회가 드메지에르에 관한 슈타시의 개인기록 카드를 발견함으로써 드러났다.
이 기록카드는 5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비공식협조자」들에 대한 관리용으로 동베를린 슈타시 본부에 보관돼 있던 것이다. 문제의 기록카드에 드메지에르의 이름은 직접 언급돼 있지 않았으나 등록번호 「81년 3468」에 「체르니」란 암호명으로 등재된 「비공식 협조자」의 주소가 동베를린 암트렙토어파크 31호로 드메지에르의 자택주소와 일치했다.
슈타시기록 조사위 위원장 요아힘·가우크 목사로 부터 이 사실을 통보받은 독일 정부는 현재 무임소장관인 드메지에르에게 지난 6일 혐의내용을 알리고 정밀조사를 가우크 위원장에게 요청키로 합의했다.
드메지에르는 자신에 대한 혐의에 대해 「결백」을 다짐하면서,동독 총리가 되기 전인 지난 1월과 3월에도 이미 같은 의혹이 제기됐다가 스러졌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당시 드메지에르는 자신이 슈타시 협조자였다는 익명의 투서가 있자 동독 검찰과 브란덴부르크주 총리 스톨페(사민당) 및 기지민사 당수 등이 참여해 사실여부를 조사토록 요구,「무고」하다는 판정을 받았었다.
그러나 지난 7일 발매된 시사주간 슈피겔지가 새로운 증거를 폭로하면서 사태는 심각한 양상으로 진전되고 있다. 슈피겔지는 드메지에르와의 접촉을 직접 담당했던 전슈타시 소령 에드가·핫세의 증언을 통해 드메지에르가 81년부터 8년간 슈타시에 협조해 왔음을 각종 증거서류와 함께 폭로한 것이다.
에드가·핫세는 자신은 그동안 매년 10∼12차례 정도 드메지에르와 자택이나 변호사 사무실,또는 「안가」에서 접촉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이 증언은 핫세 자신의 근무기록 및 「접촉보고서」에서도 확인됐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슈타시가 스스로 「비공식 협조자」로 분류해 놓은 각계 각층의 인물들은 실제로는 적극적인 정보제공자에서 단순한 「접촉대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이들을 모두 「죄인」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드메지에르도 슈타시와의 접촉사실은 부인하지 않고 있다. 다만 『변호사 업무상 불가피한 접촉들이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동독체제 안보의 최대보루이자 그 체제의 「악」을 상징했던 슈타시와 관련된 과거청산문제는 통일독일이 안고 있는 동독의 유산중 가장 고통스런 것이다. 40여년간 지속된 동독체제 아래서 애국심이나 이념에 따라서 뿐만 아니라 강요나 협박 등에 의해 슈타시와 협조한 동독 인사들은 무수히 많다.
그 「과오」들을 엄격히 심판한다는 것은 「청산」의 이득보다 오히려 민족통합을 해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드메지에르 과도정부가 슈타시 관련 조사를 지연시킨다는 비난이 일고,동독 의회가 조사책임자인 디스헬 내무장관에 대한 불신임 결의를 추진했을 때 이를 앞장서 저지한 것은 드메지에르 총리였다. 그리고 당시 서독 정부도 이 문제에 그다지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었고,통일작업을 마무리한 지금도 큰 자세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같은 배경과 관련,동독 시민운동연합체인 「연합90」 소속의 가우크 목사가 이끄는 슈타시 조사위가 통일작업 종료와 함께 통일작업의 동독측 주역 드메지에르를 표적으로 삼은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결말이 나든간에 한때 화려한 「각광」을 받으며 통일의회 의장 물망에까지 올랐던 드메지에르는 정치적 입지를 잃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통일의회에 진출한 동독출신의원들은 과거청산과 동독지역의 특수 이익대변에 한층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통일의 순간에 『눈물 없는 고별」을 외쳤던 드메지에르가 겪고 있는 곤경은 적대적 이념으로 갈렸던 동·서독의 통합이 결코 눈물과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님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베를린=강병태특파원>베를린=강병태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