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한 포기에 50원. 15만원의 생산비를 들여 재배한 2백평 한 마지기의 배추가 10만원에도 안 팔려 그냥 밭에서 썩어가고 있다. 과잉재배로 인한 가격 폭락으로 전국의 김장배추 주산지 농민들은 지금 한숨과 시름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건만,농정당국은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올가을 김장배추가 이처럼 과잉생산된 원인을 따져본다면 그 또한 농민과 농정간의 해묵은 불신 때문이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김장배추 파종기 직전인 지난 여름,중부지방의 수해와 호남지방의 한해로 김치값은 「금값」이 됐었다. 서울에서 배추 한 포기에 2천5백원∼3천원을 호가했던 것이다.
이 때아닌 김치파동은 농민들의 김장배추 과다생산 욕구를 부채질했다. 농민들은 농정당국의 과다파종자제지도를 외면한 채 적정수요량의 10% 이상을 훨씬 초과하는 2백50만톤을 재배케 된 것이다. 과잉생산에 따른 가격폭락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올 겨울은 추위마저 늦게 와 12월 중순인데도 아직 김장을 하지 않은 가정이 많아 생산지의 출하도 자연히 지지부진해졌다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사정 등을 감안해본다면 이번의 김장배추값 폭락사태에 대한 일단의 책임은 농민들 스스로에게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농민들에게 생산과 수급의 정보를 정확히 제공하고 올바른 농사를 지도했어야 할 농림수산부가 왜 과잉재배를 막을 수 없었느냐 하는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시행착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난 시절의 우리 농정의 결과가 역으로만 가는 것이어서 「정부시책과 반대로만 하면 최소한 밑지지는 않는다」는 농민들의 뿌리깊은 불신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농림수산부는 농민들로부터 그처럼 불신만 당한 채 무기력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인가.
폭락사태가 닥친 후에야 과잉생산분의 1%도 채 안 되는 2만톤을 사서 폐기한다거나,언발에 오줌누는 정도로 2억여 원의 운임비 보조를 해준다거나 하는 사후약방문식 행정으로 어쩌자는 것인가. 파종 전에 이같은 사태를 정확히 예고하고 적극적이고 신뢰받는 농정지도를 과연 추진시켜 나갈 수 없었던가.
어쨌거나 김장배추가 밭에서 그냥 썩어가도록 놓아둘 수는 없는 일이다. 소비자단체가 앞장서서라도 「한가정 배추 한 포기 더 먹기운동」이라도 펴서 허탈감에 빠진 농민들을 다같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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