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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열어 “사죄”를/정경희(아침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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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열어 “사죄”를/정경희(아침조망)

입력
1990.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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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장난의 정치인간이 독재자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한 「천구백팔십사년」은 소련에서 올들어서야 금지가 풀린 20세기의 문제소설로 유명하다. 작가 조지·오웰은 「왕초」가 모든 사람을 빈틈없이 감시하는 전체주의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여기에서 「뉴스피크」란 글자 그대로 「새로운 말」은 아니다. 독재자 왕초가 본래의 뜻과는 당치도 않은 엉뚱한 뜻으로 쓰는 말이다. 말하자면 백성을 우롱하는 「말장난」이다.

6년전인 84년 미국의 전국 영어교사협의회는 미국 정부에 대해 「뉴스피크」를 쓰지 말라고 경고한 일이 있었다. 바로 문제소설 1천9백84년의 해에 나온 경고다.

예를 들어 국무부는 세계인권보고서에서 「죽인다」는 말 대신 「불법적이거나 자의적인 생명의 박탈」이라는 아리송한 말을 썼다. 와인버거 국방장관은 레바논에서 해병대를 지중해상의 함정으로 철수시키면서 『떠나는 것이 아니다』고 우겼다. 『베이루트에서 2∼3마일 서쪽으로 재배치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장난치고 이런 정도라면 그래도 신사라고 할 수 있다.

경찰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이 문제된 끝에 정부는 새로운 경찰법안을 내놨다. 내무부 산하 치안본부를 내무부 외청인 경찰청으로 승격시키고,임기 3년의 경찰위원 5명으로 위원회를 만들어 중요한 정책적 협의·조정을 맡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정부가 임명하는 사람들로 운영되는 것이니까 정치적 중립이나 독립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다만 「경찰청」이네 무슨 위원회네 하는 말만 바뀌었을 뿐이다. 말하자면 한국판 뉴스피크다.

한국판 뉴스피크는 대부분 민주화의 공약과 관계된다. 떡 떼어먹듯 약속해 놓고 얼렁뚱땅 넘겨버리는 것이다.

○폭력에 치를 대가

땅투기가 나라를 망친다고 해서 토지공개념 소리도 요란하더니 별 볼일 없이 끝나고,대기업들이 긁어 모은 땅이 업무용이냐 비업무용이냐로 알쏭달쏭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완전히 말장난으로 끝날지 두고 볼 일이다.

국민의 고유재산인 전파가 마치 담당관청의 사유물인 것처럼 국민이 알세라 볼세라 쉬쉬 밀실작업끝에 「서울방송」이라는 간판이 내걸렸다. 말이 민간방송이지 「관변방송」이 아니냐고 해도 대답할 말이 없게 됐다. 민주화시대의 민간방송이란 말장난에 지나지 않게됐다.

요즈음 세상을 요란하게 만들고 있는 소위 「범죄와의 전쟁」도 두고볼 일이다. 왜 두고 볼 일인가? 법을 집행하는 국가권력기관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폭력조직의 줄과 줄이 닿아 술판에 자리를 같이하고,폭력조직의 두목들이 세도깨나 부리는 고위급 정치인과 줄을 대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됐기 때문이다.

폭력조직의 두목과 권세의 「짝자꿍놀이」는 우연히도 인천과 대전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연이어 들통이 났다. 인천에서는 폭력조직 두목의 석방운동에 국회의원 두사람이 도장을 찍었고,전과 15범의 두목이 전과 4범으로 재판을 받았다.

대전에서는 국회의원과 판·검사님들이 폭력조직의 「줄」과 술판을 벌였다. 정치와 권세가 폭력조직과 공생하자고 손을 잡는다면,그 정치와 권세가 무슨 꼴을 당할지는 뻔할 뻔자다. 폭력은 준만큼 받자고 덤빌 것이고,범죄와 전쟁을 하겠다면 「권력과의 전쟁」으로 되받아 치려고 대들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서울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폭력조직 왕초들이 어떻게 해선지 「공권력과의 전쟁」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이 보도됐다.

○「발목」을 잡혔나?

권세와 폭력이 더불어 살자고 손을 잡았다는 이 믿기지 않는 일이 과연 인천과 대전에만 있는 일일까? 누가 『아니다』고 해도,그것을 곧이 들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손이 떨게할 만큼 심각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이 정치의 도덕성을 믿지않고,법을 집행하는 사법조직의 권위를 믿지 않는다면 「범죄와의 전쟁」을 아무리 소리높여 외쳐도 사회적 평화는 오지않을 것이다.

폭력조직 두목 석방운동에 도장을 찍은 것은 「아랫사람」의 잘못이라고 시치미를 떼고 계속해서 금배지를 달고 국회의사당에 목에 힘주고 나오기는 어려운 일이다. 또 폭력의 「줄」과 권커니 잣거니 술을 마신 것은 그 자리에 있었던 아무개 판사,아무개 검사의 문제라고 끝낼일이 아니다.

그러고서야 이 나라의 정치와 사법조직이 과연 범죄와의 전쟁에서 범죄를 때려잡을 수 있다고 믿을 국민은 없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전쟁」을 외치기 전에 이 나라의 정치와 권력이 정말 폭력조직에 「발목」을 잡히지 않았다는 것을 국민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범죄와의 전쟁을 약속하기 전에 먼저 이나라 사법조직을 좀먹고 있는 부패가 없는지 밝혀내야 할 것이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정치권이 입을 열어 폭력조직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또 사과해야 한다. 공인이요 공복으로서의 명예로운 책임을 국민앞에 분명히 해야한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의 정치와 사법조직이 치러야될 국민으로부터의 벌을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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