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틀」 대 「불가침」 여전/비공식 접촉 최대 활용/북 사정따라 쌀·석탄 교환 등 합의 가능성제3차 남북고위급회담이 11일 시작된다. 공식회담은 12·13일 두 차례 열리지만 남북 대표간의 접촉은 북측 대표단이 판문점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이뤄지므로 사실상 이 시점부터 3차회담이 개시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측은 이번 회담에서 공식회담은 물론 승용차 동승·만찬·공연관람 등 대표들간의 비공식접촉을 통해서도 교류·협력에 관한 우리측의 입장을 북측에 적극전달할 방침이다. 우리측은 이미 3차례의 실무대표 접촉과정에서 양측의 입장이 명확히 밝혀졌기 때문에 원칙적인 부분에서의 합의도출은 쉽지 않다고 보고 즉시 실천이 가능한 세부사항에 대한 우선합의를 적극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양측은 지난달 21일,27일,12월1일 3차례의 실무대표 접촉에서 「남북 관계개선 기본합의서」와 「불가침선언」 채택문제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양측은 결국 「불가침선언」에 대한 뚜렷한 시각차를 노정한 채 접촉을 중도에 그만두었으며 이같은 평행선은 이번 3차 고위급회담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3차례 실무대표 접촉에서 나타난 양측의 입장은 남북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에 대한 우선순위로 요약된다. 북측은 군사적 대결상태의 해소없이 인적 왕래 등 일반적 교류·협력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며 우리측은 전반적 신뢰조치가 선행되어야만 군사적 대결의 해소가 가능하다며 선 신뢰회복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우리측은 북측이 말하는 불가침선언이란 사전신뢰 없이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분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우리측은 지난 9월초부터 2차례의 고위급회담이 서울평양을 오가며 개최됐지만 북측의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북측은 대외여건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회담에는 응하고 있을 뿐 기존 대남전략에 입각한 대응을 계속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우리측의 분석은 ▲1차회담에서 합의된 적십자회담에 대한 북측의 불성실한 태도 ▲평양 2차회담 이후 북측의 각종 위약 ▲노태우 대통령 및 우리 당국에 대한 모욕적 비난 등 고위급회담 시작 이후 나타난 북측 태도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북한이 일본과의 교섭을 시작하면서부터 대일 비난을 중단한 것만 보아도 북측이 현재 우리와 진정으로 대화할 의사는 없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1차회담에서 북측이 적십자회담 개최에 합의하는 등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인 것은 유엔문제를 피해가려는 전술적 대응이었다는 게 우리측의 분석이다.
이와 관련,홍성철 통일원 장관도 최근 『그 동안의 여러 정황을 종합해볼 때 북한은 바뀌지 않고 있다』고 말해 이같은 정부의 시각을 분명히했다.
따라서 우리측은 북한의 불가침선언 주장을 기존 대남전략차원의 상투적 선전공세로 파악하고 있다. 즉 실제로 「불가침」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이를 대일 교섭 등 서방과의 관계개선 추진에 활용하는 한편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주한미군·핵무기 철수주장의 고리로 삼으려는 의도로 보는 것이다.
우리측은 이같은 판단 아래 북한측이 대남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불가침선언 채택에 동의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이다. 북이 진정으로 대화의사를 갖고 「불가침」을 실현하려 한다면 구체적 실천으로 표현되는 「기본틀」 마련에 합의하자는 것이다.
우리측의 이러한 강경한 입장은 북측이 현재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판단에 기인하는 부분도 크다. 즉 북한은 현재 극심한 경제난에 처해 있으며 이의 타개를 위해 대일 교섭을 서두르고 있으나 「남북 관계개선」이라는 전제에 부딪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측은 최근 연형묵 정무원 총리의 중국방문을 통해 중국측에 식량 등 경제지원을 요청했으나 긍정적인 회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이 현재 ▲소련의 경화결제요구 및 우호가격제 폐지 ▲식량부족 등으로 내년도에는 더욱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무언가 합의를 도출하려 애쓸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북측 태도로 볼 때 북측이 희망하는 합의부분은 구체적 실천사항보다는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내용이 될 가능성이 짙다.
이에 대해 우리측은 구체적 실천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것이라면 합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북한측이 이번 3차회담에 응한 것과 같은 대내외적 필요성에 따라 기존의 대남정책을 일부라도 수정하고 나온다면 「기본틀」의 원칙 합의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경협이나 직통전화 설치 등 부분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은 있다. 특히 쌀·석탄 교환이나 우리측의 광물수입 등은 북한의 체면유지에 대한 배려가 필요할 경우 비공개 약속하에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정광철 기자>정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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