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강을 보며/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강을 보며/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입력
1990.12.11 00:00
0 0

외국을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귀국비행기에 올라 앉았을 때의 그 착잡함과 가슴이 짓눌리는 답답함을.판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땅,알아듣기 어려운 외국어,처음 보는 사람들 속에서 누린 작은 해방과 자유는 이제 끝났다. 영화를 2편이나 보고 앉은 채 계속 먹어대고 잠이 들었다가 깨기를 되풀이하면서 보이는 것이라곤 구름이나 바다뿐인 태평양을 건너온다.

오래 떨어진 가족과 친지,동료들에 대한 여행기간의 그리움이나 향수는 한국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엷어지고 「이제 또 한국에서 살아야 하는구나」하는 암담한 체념이 커져간다.

한국땅에 들어섰다. 저 작고 좁고 살기싫은 땅. 그나마 반쪽으로 갈라진 국토. 왜 산마저 작고 돌뿐인 것일까.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 땅이 천혜의 국토이며 금수강산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여행을 할 때마다 사계가 뚜렷한 나라치고 금수강산 아닌 땅이 어디 있던가.

저 좁은 땅에서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모양 그 꼴일 것이고 부패한 공직자들은 돈먹을 궁리나 할 것이고 투기와 퇴폐,범죄는 더 심할 것이고 끝없는 분규와 시위,집단이기주의속에서 서로가 찢고 할퀴는 악다구니와 아귀다툼도 그대로일 것이다. 희망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국민들은 여전히 시달리고 부대낄 것이다.

저 땅에 태어난 사람은 저 땅에 늘어붙어 살다가 저 땅에 묻혀야 하나. 떠난들 별수가 있을까. 한국이 싫어 등진 사람들이나 상한 삶을 새롭게 해보려고 떠난 사람들도 결코 행복하지는 못하더라. LA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국의 더 한국」에 살고 있더라.

한국이 사랑이면서 사슬이라는 정현종의 70년대 시 「술잔을 들며」를 생각하게 된다. 「이쁜 가슴 비벼 이는/푸른 빛의 메아리속에/자유있는 육체와 육체있는 자유로/일과 춤을 섞고 사랑한다 말하며/농부들은 씨 뿌리고/시인들은 노래하며/학자들은 생각하고/애인들은 사랑하는 땅/아 우리들의 명절이 있어야겠다/한국,내 사랑 나의 사슬아!」

한국은 어쩔 수 없는 사랑이자 나를 묶어맨 사슬이다.

그런 답답함과 가슴 짓눌림은 한강이 보일 때부터야 겨우 풀려갔다. 우리의 산하를 골고루 자애롭게 보듬고 어르는 부드럽고 원만한 곡선의 넉넉한 흐름이 내려다 보일때부터 한국땅은 다시 조금씩 사랑스럽기 시작했다.

한강은 서두름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의 여유,한곳에 고여 썩지 않는 성실함과 치열함,낮은 데로 흘러 빈곳을 채워주는 상선약수의 겸손함 그것이었다. 한강은 구원이었다. 그 흐름에 견주면 인간의 온갖 희노와 욕망은 한갓 미망일 뿐인 것 같았다.

그래 저 땅에서 또 살아보자. 사랑과 사슬에 매이고 묶여 또 시달려보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