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대화와 절충을 통한 정치의 본래기능을 서서히 회복하고 있다. 민자당 출범 이래 잠시의 쉴틈도 없는 대치와 소모적 내분으로 정치를 실종시켰던 여야는 정기국회가 종반에 접어들자 관계정상화를 도모,지자제 등 각종 쟁점과 현안들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여야의 관계정상화를 통한 정국안정은 아무래도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관계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3당 합당 이후 범여권내에서의 자리굳히기에 골몰해왔던 김 대표가 서서히 대야관계에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고 3당 통합으로 극도의 세 위축을 느꼈던 김 총재도 안정감을 되찾아 유연한 자세를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 두 김씨는 관계를 상당히 돈독히 만들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야권시절 「경쟁과 협력」으로 표현됐던 두 김씨의 관계가 여야로 나눠진 요즘들어 제2의 「경쟁과 협력」을 재현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김영삼 민자당 대표/“대안없다” 범여 「포섭」서 「포위」로/“시간은 우리 편” 수성전략/선거국면 조기전환 주력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전망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의 기본 틀은 「수역」이란 표현으로 요약된다. 「마산행」이란 극약처방으로 자신의 여권내 정치적 입지를 스스로 시험해본 후 그의 처신은 몇가지 점에서 과거와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합당 후 지난 10월까지의 행동방식은 내각제 논의를 둘러싼 당내 불협화의 와중에서 좌고우면하는 불안정한 모색기로 표현할 수 있다. 반면 여권 핵심부로부터 내각제의 백지화 카드를 얻어낸 후 지금까지 그의 행동반경은 사실상 「14대 대권게임」 쪽으로 급속히 압축되는 듯한 느낌이다.
당내 계파간 정립구조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이지만 문제를 대권무대로 단순화시키면 당의 선택은 김 대표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고 「노태우 대통령의 잔여임기를 고려한 시간은 김 대표 편」이라는 게 상도동측의 공공연한 시각. 이러한 시각의 뿌리는 대통령 직선제와 김대중 평민총재의 존재라는 정치현실에서 출발한다. 또한 합당 후 이른바 초계파적 당운영이란 모양새에 치중해왔던 전략이 중대한 결함을 갖고 있었다는 반성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김 대표는 우선 자파 핵심측근 2∼3명 외엔 당내 사람들과의 공개적 자리를 거의 피하고 있다. 한때 『상도동에서 김 대표와 아침식사를』이라고 불리며 관심을 모았던 민정계 중진의 「포섭」 노력이 헛된 수고였다는 판단을 내린 김 대표의 보폭은 크게 둘로 나뉘고 있다. 12월 한 달 동안 이미 2백여 건의 각계 방문·회동이 예정돼 있는데서 보 듯 당내문제에 관한 접근 방식이 바뀌어온 게 첫째.
대권게임을 전제한 그의 포석이 과거 안으로부터의 「포섭작전」에서 이제는 외곽으로부터의 「포위작전」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얘기다. 항상 국민을 최대 무기로 내세워온 그의 입장에서 볼 때 당내의 구조적 갈등을 친화적 손짓 만으로 해결하기엔 한계를 느꼈다는 것이고 때문에 당 대표로서의 주어진 권한과 지위에 착안,두 김 대결을 은연중 공론화하는 방향을 택했다는 해석이다. 김 대표는 이같은 자신의 「무심한 듯한」 행보와 함께 김동영 정무장관 등 측근 대리인들을 통해 민정계의 몇몇 주요인사 등을 겨냥,별도의 중점 거점확보 노력도 아울러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김 대표가 야당 이상으로 지자제실시에 관해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는 심중을 해석하기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지자제선거에서의 승패 전망을 떠나 정국을 서둘러 선거국면으로 몰아가는 게 일사분란한 거당적 당체제를 정비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범여권내에 반YS 감정이 적지 않음을 알고 있으나 정국이 선거체제에 돌입 할 경우 김 대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정권수호개념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상도동측의 관측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대권후보 경선주장을 사시로 봐오던 김 대표가 최근 연세대 학생과의 간담회에서 『민자당의 대통령 후보는 경선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공개적 언급을 한 배경엔 나름대로의 계산과 복안이 서 있기 때문이란 풀이가 적지 않다.
실제 김 대표는 92년 5월의 전당대회를 내년말쯤으로 앞당기는 방안을 적극 추진중인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는 총선 후 정국상황이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음을 감안한 포석이란 얘기가 유력하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예정된 시간표라면 김 대표의 대권후보 결정은 시간만 남은 선택』이라고 말하며 『그러나 지자제·총선결과에 따라 정치판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짜여질 가능성,예컨대 야측의 입장변화로 내각제 논의가 새로운 차원에서 부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 대표가 지자제선거법 협상과정에서 비례대표제에 관해 수용과 거부 사이에서 다소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그의 대권전략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비례대표제 문제로 여야협상이 결렬되는 상황은 김 대표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고 비례대표제를 야당에 양보하더라도 선거국면의 조기조성이 당내 외적으로 그의 위상을 굳히는 방편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대중 평민총재가 명분상 다소 떨어지는 지자제 비례대표제 또는 중선거구제 주장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김 대표의 생각을 넘겨짚고 있기 때문이란 관측도 유력하다.
김 대표측은 이와 함께 노 대통령과 김 대표의 주례회동이 매주 토요일 정례화되고 있음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이같은 정례회동이 당내 김 대표 위상 제고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며 김대중 총재의 대여공세가 역설적으로 김 대표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측면을 십분 활용하려는 눈치이다.
이 때문에 「가출」에서 돌아온 뒤 소리를 죽여온 김 대표의 심중은 본격적인 대권궤도 위에 오른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정가소식통들의 관측.
아울러 국회 대표연설에서 감지됐던 두 김의 묘한 「교감」도 주목할 대목. 『영원한 여도,영원한 야도 없다』는 같은 목소리를 내온 두 김의 공감대는 간헐적인 세대교체론 주장이 무게를 얻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 흔적이 짙다.
합당 후 등을 돌린 두 김 관계이지만 또 한 번의 대권대결을 위해선 두 김이 이해를 갖춰야하고 이같은 아이러니의 틈새로 김 대표의 대권 계산이 숨어 있다는 결론이다.<이유식 기자>이유식>
○김대중 평민당 총재/「대여」 재설정·당세 보강등 구상/강경노선 탈피 유화자세/“지역당” 멍에 벗기 총력전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3당 합당의 후유증과 사퇴 및 단식 정국의 부가를 떨군 모습이다. 오히려 내각책임제 개헌 백지화와 지자제실시 관철 등을 기반삼아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 총재는 국회 대표연설에서 대화와 화해의 제스처를 물씬 풍기더니 이제는 정국운영에 있어 유화적인 태도를 분명히하고 있다. 사퇴와 단식정국의 와중에서 보였던 강경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지자제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정치를 안 했으면 안했지 국회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던 완강한 입장은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내년 봄에 지자제선거를 있게 하기 위해 협상이 갖는 상대성을 감안해 신축성을 보이겠다』는 유연성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금까지 큰 문제에서 평민당이 주장해 관철되지 않은 게 있었느냐』면서 향후 정국에 대한 자신감 피력도 잊지 않고 있다.
김 총재는 정기국회가 끝나면 연말과 연초의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차분히 입장을 정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경우 모든 초점이 93년의 대권고지에 모아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김 총재 구상의 요체는 대여관계 재설정을 중심으로 한 외부부분과 평민당 당세보강과 야권정비 등 내부적 측면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외부부분에 있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의 확연한 관계개선 조짐이다. 김 총재는 단식 때 자신을 찾아온 김 민자 대표와 50여 분간 단독요담을 한 이래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지자제관철과정과 정기국회 운영의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되었다.
심지어는 김 민자 대표가 내각제 각서파동에 의한 민자당 내분과정에서 마산에 내려갈 때 두 사람 사이에 최종적인 의견교환이 있었다는 얘기마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김 총재는 내년 봄에 민자당이 또 한차례의 극심한 내분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경우 노태우 대통령이 취할 선택과 김 민자 대표가 어떤 행보를 하고 나올지에 벌써부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김 총재는 김 민자 대표와의 관계개선 못지 않게 노 대통령과도 3당 합당 이전의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할 태세인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재로서는 노 대통령과의 관계회복이 대여관계 재설정에 불가피하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하고 있는 것이다.
김 총재의 대권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중 하나는 자신과 평민당에 쏟아지고 있는 지역당의 멍에를 벗어나는 일이다.
평민당이 지자제협상 과정에서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중선거구제를 고수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비례대표제 관철이 어렵게 되자 중선거구제 관철에 비중을 두면서 필요할 경우 국회의원 선거에도 중선거구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입장까지 보이고 있다.
평민당은 소선거구제로 지자제선거가 치러질 경우 선거의 승패와 관계없이 평민당의 지역성이 더욱더 돋보이게 될 것이고 이는 곧바로 김 총재의 대권가도에 커다란 장애요인이 될 것이라는 점을 십분 감안하는 모습이다.
내부문제에 있어서는 야권통합이 사실상 어렵게 됐기 때문에 통합에 대비하기 위해 미뤄놓았던 많은 미결사항들을 정리해야만 할 처지이다. 우선 평민당은 지난 8월의 전당대회에서 통합에 대비하기 위해 당직개편을 전면 보류해 놓았으며 지난봄 추진되었던 영입작업도 통합의 와중에서 주춤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평민당 지도부는 기약도 없는 통합에 언제까지 매달릴 수만은 없다는 입장이어서 자체정비와 세규합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재는 등원결정을 할 때 『야권통합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얘기했는데 이번 국회가 끝나는 대로 이를 공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재가 밝힐 이 대안은 특별한 내용이 있는게 아니고 영남 인사와 중도민주세력에 대한 활발한 영입작업을 통해 평민당의 세력을 보강하고 지자제선거를 계기삼아 지난 4·26총선 때처럼 외부 수혈을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봄에 이미 김상현 전 민주당 부총재 등 상당수 인사가 입당의사를 밝힌 바 있으며 학계와 법조계 등에서도 호응이 있어온만큼 이를 구체화 시킨다는 것이다.
김 총재는 이를 위해 지도체제를 집단 지도체제로 바꾸고 평민당 당명 때문에 영입에 주저하는 인사가 있을 경우 당명까지를 바꿀 용의가 있음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 총재는 지난 봄에도 3당 합당에 따른 대안으로 이같은 용의를 밝힌 바 있는데 민주당과의 통합논의 때문에 유보된 상태에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직도 우리나라 정치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외국과의 관계를 감안해 내년 2월에 미국을 방문하고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독자적인 방북단을 파견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김 총재가 이러한 계획들을 어떤 형태로 구체화 시킬지는 정국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90년 정국을 새해부터 강타했던 3당합당의 여파를 극복해가는 모습을 보일 것임은 확실하다. 그래서 김 총재는 비교적 여유있는 자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이병규 기자>이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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