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헤어져 7순 노인으로/아우 학명씨 오늘 상봉할듯9일 서울에서 첫공연을 가진 평양 민족음악 단원중 최고령인 「인민배우」 김진명씨(78)의 동생이 서울에 살고 있는 사실이 밝혀져 형제상봉이 이루어지게 됐다.
김씨가 바로 손위형이 틀림없다는 김학명씨(74·서울 강서구 공항동 53의34)는 이날 자택에서 기자를 만나 『8일 판문점을 통해 서울로 온 북한대표단에 들어있는 형님의 모습을 TV에서 본뒤 너무 반가워 식사조차 제대로 할수 없었다』며 『형님을 만나볼수 있는 길이 없겠느냐』고 애를 태웠다.
김진명씨도 이날 공연직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20대초 서울에서 잠깐 같이 살았던 학명·순명 등 두형제가 지금 살아있다면 74,70세가 됐을텐데 소식을 듣고 찾아주길 바라며 빨리 만나보고 싶다』고 밝혔다.
9일 밤 우리측 연락관은 김씨 형제가 10일 상오9시 형 김씨의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만날수 있도록 하자고 북측에 제의했다.
동생 학명씨는 이날밤 TV에 형 진명씨의 기자회견 장면이 방영되자 『형님』하고 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김씨는 진명씨가 회견에서 『생사를 모르는 아우가 보고 싶다』고 말하자 『제가 여기에 있는데…』라며 목이 메었다.
동생 김씨에 의하면 두형제는 황해 해주군 수하면 신황리에서 2백석 농사를 짓던 김병기씨(46년 작고)의 4남1녀중 2남과 3남.
김씨는 『형님이 어릴적부터 가족중의 「밉지않은 난봉꾼」 이었다』고 회고했다.
아버지가 서당에 보내면 『신학문을 배우겠다』며 도망쳐 나오기 일쑤였으며 15세 되던 때인 27년께는 서도민요 「배따라기」를 하러간다며 평양길을 떠났다.
이후 진명씨는 바람이 스쳐가듯 이따금 집에 들렀고 동생 학명씨에게 『대동강변의 권번 기생학교에서 서도민요를 가르치고 있으니 틈나면 들러라』는 편지를 보내오곤 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형이 19살 나던때 그간 가족이 이사 가 살고 있던 황해 연백군 용도면 난계리 5구96 집으로 찾아와 당시로는 흔하지 않던 유성기판을 자랑스럽게 꺼내 보이며 「도라지타령」을 일본 동경에서 녹음했다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김씨가 형을 마지막으로 본것은 48년.
평양에 살고 있던 형은 당시 형수와 함께 연백집으로 찾아와 『관절염을 앓고 있다』며 『옷가지를 챙기러 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때 형 내외와 가까운 바닷가에 망둥이 낚시를 간것이 형제의 마지막 만남이었다고 회고했다.
김씨는 1·4후퇴때 맏형 봉명씨(64년 작고) 막내동생 순명씨(78년 작고)와 3형제 만이 피난을 왔다.
월남후 인천에서 5년간을 형제들이 함께 지내다 58년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옮겨왔다. 김포공항 부근의 전투비행단 군무원으로 근무했던 김씨는 55세때 정년퇴직하고 밀가루제품 장사를 하다 지금은 부인 이영애씨(69) 막내아들 성건씨(29·전기통신공사 직원)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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