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김덕주 대법원장의 취임초 제1과제는 우선 사법부의 기강을 바로잡는 문제가 될 것이다. 검사와 폭력배 두목이 관련된 술자리 파동에 판사도 끼어 있었으며,그로 인해 사법부의 위신도 떨어졌으리라는 점에서는 그럴 필요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새 검찰총장이 위기의식을 가지고 기강확립 문제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데서 보듯이 오늘날 검찰 못지않게 국민으로부터 불신의 도가 깊어지고 있는 것은 사법부도 마찬가지 입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의 신뢰가 기강만 확립되면 단숨에 두터워지는 것은 아니나 신뢰구축의 토대는 사법부 자신의 정화의지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또 기강문제와 관련,사법부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것도 현안의 하나이다. 전임 이일규 원장이 취임할 때 대법관을 외부에서 영입한 것 등의 근인과 법관인사의 특수성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겹쳐 인사침체가 심화돼 있는 것은 심각하다. 사법부의 대응기관인 검찰과 반드시 인사의 균형을 이루어야 할 이유는 없겠으나,검찰총장과 같은해에 임관한 고시 13회가 아직도 고법 부장판사로 처져 있는 등의 심한 불균형상태는 해소시켜야 할 것이다. 사법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검찰과의 업무수행을 원활하게 하고 법관들의 사기를 위해서도 조속한 시일내에 과감하게 인사의 숨통을 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새 원장에게 부여된 최대의 과제는 역시 각급 법원의 판결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다지고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하는 임무를 재인식하는 데 있다. 사법부가 여론에 영합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증거의 문제 등 미시적인 실무에 지나치게 매달려 강력범죄를 응징해달라는 국민의 요구와 상치되는 판결이나 결정을 내리는 사례가 많았다거나,5공단죄의 의지가 약했다는 비난을 받은 일 등은 시대흐름과 국민의 법감정 등에 미루어볼 때 사법부가 반성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또 사회발전이나 민주화 속도에 걸맞지 않은 수구적 입장을 고집하는 것도 많은 분야에서 발전의 동인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빚는다는 점도 간과할 수가 없을 것이다.
김 원장은 보수성향의 인물이며,미묘하고 복합적인 사안에 대한 현실적 적응능력이 뛰어나다는 평판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그는 3공 이래 6공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시국에 관련된 사건이나 사회성이 높은 판결을 많이 다루어왔으며,그 과정에서 유능함이 돋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야당이나 재야 법조계에서 그의 그같은 전력을 들어 거센 반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는 인식할 수 있을 듯하다.
민자당이 다수의석을 점하고 있는 국회에서,김 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은 이변이 없는 한 통과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취임을 전제로 두 가지 사항을 당부코자 한다.
김 원장은 6공 후반기와 다음 정권까지 사법부를 이끌어가는 중책을 안고 있으며,2천년대 사법부를 위한 발전의 토대를 다져야 할 입장이다. 과거는 어찌됐든간에 심기일전해 사법부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외풍을 막는 역할을 단호하게 수행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대법원장이 판결에 미치는 영향은 결정적일 경우가 많다. 김 원장의 보수성향이 전향적이고 진취적인 판결이 나오는 데 있어 지나친 제동역이 되지 않길 바란다. 자칫 그것이 역사발전의 장애가 될 수 있겠기에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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