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 검찰총장께먼저 취임을 축하합니다. 기대 또한 큽니다.
지난 5월 대통령이 직접 선포한 「총체적 위기」를 당하여,정총장은 특명사정의 총 책임자로 큰 구실을 해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대통령이 거듭 선포한 「대범죄 전쟁」의 막바지에 이르러,그 「전쟁」의 결전기 사령관으로 임명이 된 것입니다. 이로써 총장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움을 알만 합니다만,처음부터 새 검찰총장 물망에 별다른 경합과 잡음이 없었으니,중목이 일치하는 바가 있은 것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당연히 기대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같은 기대의 크기는,새 검찰총장의 취임을,모든 신문이 사설로 다룬 내용에서도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임기제 검찰총장의 첫 교대라는 사실에 연유하는 것은 아닌줄로 압니다.
총장 임기제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자성 확립을 위한 장치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총장 임기제만으로 검찰 본연의 위상이 확보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실제로 총장임기제의 시행 1년을 맞은 작년 이맘 때,서울 변호사회가 실시한 여론조사는 6공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회의가 84%,임기제 이상의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80%나 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임기 2년의 소임을 마친 전임총장 역시 임기제만이 검찰의 독립을 확보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비록 임기제 제2대 총장이라 하더라도,정총장을 향한 흥망이 결코 「수성」일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여러 신문 사설의 한결같은 논조가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만큼 새 총장에 대한 기대가 새롭고,그 기대에 부응할 새 총장의 결심과 복안이 궁금하다 할 것입니다.
생각을 달리해 보면,정총장에 대한 기대가 그처럼 크다는 것은,우리 검찰 전체를 위해서는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국민들의 의혹을 풀어주는 주체이어야 할 검찰이,오히려 의혹이 대상으로 되고 있는 듯한 요즘 검찰의 형편을 두고 볼 때 그렇습니다. 오죽했으면,대통령이 새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공권력기관의 품위손상을 걱정하고,의혹해소를 당부하기까지 했겠습니까.
아닌게 아니라,지난 얼마동안 신문에는 읽기에 민망한 검찰관계 기사가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이른바 TK편파인사의 후유증,잇따라 터지는 검·권유착의 의혹과 추태,수감중인 폭력배까지 일제수배하는 따위 실태의 연발 등등… 어찌하다 우리 검찰이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입니까. 이 정도는 일어탁수에 불과한 것입니까.
나는 이들 뜸직한 기사들 말고도,지면 한 귀퉁이에 간간이 보이는 작은 검찰관계 기사들을 유심히 읽습니다. 근래의 것으로는,지난번 인천지검의 폭력 전과누락사건이 요란하던 무렵,검찰 수사관 4명이 가정주부를 오인연행하여 18시간 불법 감금했다는 보도가 기억에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사관들은 담을 넘어 들어와 가택을 수색하고,검사실에서까지 폭행을 했다고,그 가정주부가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사를 읽으면서,나는 작년들어 검찰이 자체수사요원 2백명을 10배로 늘려 검찰의 독자적인 수사체계를 구성한다고 했던 일을 상기합니다. 이 뒤로 검찰은 마약과 투기,떼강도·조직폭력·인신매매 등 민생사범과,고소·고발 사건을 직접 수사한다는 방침을 밝혔고,노사분규·공해사범에 이르기까지 숱한 전담반을 설치,검사들을 일제 단속현장에 투입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검찰의 의욕자체를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의욕이 지나쳐 검찰이 사사건건 수사의 1선기관으로 나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달리 말하면,그것은 검찰의 경찰화가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근래 검찰이 겪는 말썽의 한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경찰화한 검찰은 검찰답지 못하고,그래서 검찰답지 못한 말썽이 생긴다고 해서 틀림 없을 것입니다.
아마 이 문제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또는 수사영역과도 관련이 될 듯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검찰간 이견이 심각한 줄로 압니다만,검찰다운 검찰상을 위하여,다음 몇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검찰의 수사지휘권에 관한 것입니다. 검찰로서 범죄에 대처하는 첫 방편은 수사지휘에 있는 것이지,범죄수사 자체를 차고 앉는 일은 아닐 것이란 말입니다. 그 이치는 전선에서 제1선부대와 제2선부대의 구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으로 압니다. 형사사법기관 상호간 권한의 합리적인 분배와 조직,운영방안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지니는 제2차적 통제기능입니다. 검찰이 이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때에만 수사의 민주화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수사지휘권을 가진 검찰이 경찰 위에 군림하면서,수사민원에 대해서는 경찰을 비호하는 인상이 없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에도 새 검찰총장의 큰 과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검찰동일체의 원칙」등 검찰의 상명하복관계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도 들린다는 점입니다. 그 원칙 자체를 법리상 당연한 것이라고 한다면,문제는 그 운영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점은 새 검찰총장의 검찰운영 스타일에 달린 일이라,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이 불가피한 요즘이라 검찰의 책무는 참으로 막중합니다. 또 검찰에 대한 신뢰회복이 시급한 때의 총장 소임도 막중하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앞으로 2년간이 중책을 담당할 임기제 제2대 검찰총장의 건투를 빌어마지 않습니다.<상임고문·논설위원>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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