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지자제선거법 협상이 선거구방식과 비례대표제의 도입여부를 놓고 막바지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여당은 소선거구제,야당은 중선거구제를 주장하는 선거구방식은 양자가 일장일단이 있어 여야의 막바지 겨루기에 맡길 수 밖에 없겠으나,비례대표제의 경우는 문제가 만만치 않다고 보아 반대하는 것이 우리의 견해이다.오래전부터 중부 및 북부유럽 각국에서 실시해온 비례대표제의 원래목적은 일반정치꾼들과 경쟁할 수 없는 유능한 직능대표들을 의회에 진출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같은 취지로 6∼8대 및 11∼13대 국회에서 채택한 우리나라에서는 야당의 경우 자금조달의 방편으로 활용돼왔다.
여당의 독점으로 정치자금 염출의 길이 막혀 있는 야당으로서는 어느 면에서 고육지책이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6대 총선 때 1천여 만 원 하던 것이 지난 13대 때는 최고 십수억 원을 호가,치열한 경합을 벌이게 되는 사태로 발전돼 갔고,돈을 주고 배지를 단 의원들이 역대국회에서 탈선한 사례가 많아 비례대표제의 취지가 변질돼버린 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지방자치의 참뜻은 주민들이 대표들을 뽑아 고장의 살림을 효율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역·기초의회의원 모두 누구보다도 그 고장의 형편을 잘 알고 자기 나름대로의 발전복안을 갖고 있어야 할 뿐더러 주민들의 친구이자 심부름꾼으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어야 함은 움직일 수 없는 원칙이요 정론이다.
그런데 중앙당과 당 총재가 마음대로 시·도 및 시·군·구 의회의원의 비례후보를 결정한다는 것은 위의 원칙과 정론에 위배된다. 더구나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오죽하면 야당이 그런 생각을 하겠느냐』고 하며 비례제를 자금염출원으로 삼을 뜻을 비친 대목은 납득하기 어렵다. 전국적으로 광역과 기초의회의원의 일부 후보를 비례로 할 경우 정당은 돈을 가진 후보들로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착실하게 지역에 묻혀 일꾼수업을 하는 선량한 후보들은 설 땅을 잃게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지자제선거에 비례제를 적용하는 희귀한 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즉 독일의 일부 시·군과 프랑스의 일부 레종,도,코뮨(인구 3천5백명 이상)에서 채택하고 있다.
이곳에선 처음부터 각당에서 지방의원 정수만큼의 후보를 공천하고 유권자는 지방정책을 기준삼아 정당에 투표,득표에 따라 의원수를 배분하는 것으로 어느 면에서는 정당투표배분제라는 것이 옳다. 따라서 정당은 지역별로 짜임새 있는 정책을 제시하고 그 고장의 신망있는 인물들을 엄선하고 있으며 이때 후보자리의 매매란 있을 수가 없다.
평민당이 비례제의 명분의 하나로 제시한 정수후보의 여성할애 문제도 그렇다. 우선 남녀동등정신에도 어긋날 뿐더러 상대적으로 지역구를 통한 여성의 진출이 위축·봉쇄될 여지가 없지 않다.
세계유일하게 지방의회의 일정의석을 여성에게 할애하고 있는 자유중국의 경우 실제는 국민당 일당독재에 대한 반발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우리는 비례제를 어쩔 수 없이 자금원으로 삼으려는 김대중 총재의 심경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또 그의 말대로 정치자금기탁제 운영에 있어 대부분 지정기탁인 데다 그것도 99%가 여당 쪽이어서 결국 야당은 자금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자금의 합리적인 배분차원에서 별도 협상을 통해 시정해나가야 할 문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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