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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거래엔 백지(한국을 기다리는 소련시장: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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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거래엔 백지(한국을 기다리는 소련시장:중)

입력
1990.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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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무역 개념없어 “주먹구구식”/협정등 불구 실무진선 몰라… 상담골치/“경제는 무정부”… 본격 교역엔 정지필요국내 기업의 현지 주재원들이 소련사람들과 상담을 벌이면서 가장 곤욕을 치르는 것중의 하나가 이들이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경험이나 이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특정의 사업추진에 관해 높은 사람들끼리 원칙적인 합의가 되었다 하더라도 실무차원으로 들어가면 사사건건 벽에 부딪치게 된다.

이를테면 소련정부 관리나 기업인 가운데는 기본적으로 상품을 외국으로부터 수입할 때 신용장을 개설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다. 단순한 외상거래 관행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이니 대금연체시 연체이자에 대한 개념도 희박하다. 좋게 말해서 서로가 「인간적으로」 믿고하는 사업이니만큼 『내가 언제 돈떼어 먹겠다고 했느냐. 걱정말라. 곧 갚아주겠다』는 식이다.

대기업이야 2∼3개월정도 대금결제가 밀려도 그런대로 버틸 수 있지만 당장 한푼이 아쉬운 중소기업으로서는 이렇게 나오면 낭패가 아닐수 없다.

숫자개념도 희박하다.

워낙 땅덩어리가 크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예를들어 삼림개발을 한다고 하면 위치선정 과정에서 적당히 지도위에 줄을 척척 그으면 그만이다.

그 지역안에 있는 나무의 수종이 무엇인지,벌채가 가능한 것인지 기초조사도 되어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큰 관심도 없다. 실제로 국내 모 기업이 벌채를 하기 위해 해당지역의 나무들을 하나하나 검사하기 위해 나무둘레를 재고 표식을 하는 것을 보고는 현지인들이 도대체 무얼하는 거냐며 궁금해하는 광경이 연출된 적도 있다고 한다.

또 한 예로 스웨터 한다스에 50달러15센트라고 할 때 한참 상담이 진행중인데 불쑥 계산하기 골치아프니 끝단위는 떼어버리자는 제의가 나오기도 한다. 고도의 장삿속에서 나온 제안인지 아니면 정말 숫자개념이 모호해서 그런것인지 실무자들은 난감할 따름이다.

「5백일 경제개혁안」이 본격시행되면서 연방정부 및 공화국정부에 대대적인 기구개편이 이루어져 효율성있는 상담도 곤란하다.

도대체 이 사안을 어느 부처의 누구와 상의해야 할지가 확실치 않다.

고르바초프를 비롯,소련정부 고위층에서는 시장경제체제로의 이행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실무적으로 이끌어갈 중간관리층이 부족하다. 또 국영공단이나 일반기업인 등도 시장경제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에 『합작사업을 벌이자』느니 『바터교역을 하자』느니 의욕은 높지만 운송 하역 대금 결제 등 실제적인 과정에 들어가면 두손을 들기가 일쑤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사정이 극도로 혼란한 상태여서 어느 누구도 특정사안에 확고한 결정권이 없는 상태이다. 반면에 누구나 자신이 권한이 있다고 주장한다.

공화국정부는 그들대로 연방정부의 의사와 관계없이 독자적인 사업추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레닌그라드에서 만난 한 소련인 기업가는 『이제 우리는 더이상 모스크바의 지시에 얽매이지 않는다. 모든 대외교역은 이제 레닌그라드정부가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며 한국의 기업인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널리 알려줄 것을 당부했다.

사실 지금 소련에는 엄격히 말해 경제에 관한 법률이 없는 상태다.

지난 10월19일 소련최고회의가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위한 5백일 계획을 채택한 이후 각종 법령을 공포하고 재정적자 삭감 및 화폐발행 억제,국영기업체제의 개편,국가통제 가격의 단계적 인상 등 제1차 단계작업이 시행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정치·경제적으로 극도로 혼란한 상태이다.

소련 상의의 한국담당인 니콜라이·세르게이제프씨는 『왜 양국간의 경협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고있느냐』는 질문에 『현재 소련은 정치·경제적으로 과도기이다. 좀더 차분히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다.

이같은 구조적인 문제점과 함께 시장경제체제로 본격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각종 지원체제도 아직 미흡하다.

지난 10월에 한소간 체신협정이 체결되어 4개 직통전화회선이 가설되게 되었다고 발표되었지만 아직도 소련에서 서울로 전화를 하려면 하루전에 예약을 하거나 몇시간씩 교환원과 씨름을 해야만 하며 팩시밀리도 런던이나 동경 등을 경유해야만 한다.

따라서 소련에 진출한 국내기업들은 아예 시간을 정해서 하루에 한번씩 서울본사와 고정적으로 통화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정보를 교환해야 한다.

모두가 이런 상황이니 조만간 노태우 대통령의 방소를 계기로 투자보장협정 등 각종 협정이 일괄타결된다고 해도 이것이 곧바로 소련측과의 교역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 기업인들은 별로 없다.

『겨우 하드웨어가 마련되는 셈이지만 앞으로 이를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개발되려면 훨씬 더 오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게 현지 주재 상사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모스크바=박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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