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사임” 승부수 던진 에르샤드 방글라 대통령(뉴스메이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사임” 승부수 던진 에르샤드 방글라 대통령(뉴스메이커)

입력
1990.12.05 00:00
0 0

◎범야당세력 재분열 노려 전격적으로 발표/정치역사 피로 점철… 정권이양 속단 어려워후세인·모하메드·에르샤드 방글라데시 대통령(60)이 3일 전격적으로 발표한 총선전 사임제의는 모처럼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며 6주째 반정부시위를 주도해온 야당세력의 재분열을 노린 고도의 정치적 「승부수」이다.

에르샤드 대통령은 이날 전국으로 중계된 TV연설을 통해 ▲91,92년에 각각 따로 실시예정인 대통령선거와 의원선거를 91년중 동시에 실시하고 ▲자신은 총선 15일전 사임한 뒤 정권을 야당이 동의하는 부통령에게 이양,선거를 관리토록 하겠다는 등 10개항에 걸친 대 야당 화평안을 제의했다.

여기에는 지난달 27일 선포된 비상사태를 오는 16일에 해제하겠다는 약속과 74년이래 지속된 언론에 대한 검열제도를 즉각 폐지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에르샤드의 이같은 제의는 그가 바로 하루전,4일부터 전개될 무기한 총파업에 맞서 보안군에 시위대에 단호히 대처하도록 지시한 사실에 비춰 볼때 「코페르니쿠스적 선회」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동안 야당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것도 대통령의 사임과 의회 해산,그리고 야당의 인정을 받는 부통령에로의 권력이양 후 즉각 총선이었다.

야당의 요구와 에르샤드의 제안 사이의 차이는 야당세력이 즉각적인 사임을 주장하는 반면 에르샤드는 그 시기를 91년중으로 모호하게 설정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바로 이러한 측면 때문에 강경일변도로 치닫던 에르샤드가 마침내 민의에 굴복,백기를 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야당세력의 전례없는 단결 ▲대학생과 언론인 등 지식인계층의 적극적인 시위가담 ▲경제원조 중단을 무기로 한 미·일·영의 강도높은 대 정부비난 성명 ▲강경진압에도 좀체로 수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고 점차 무장투쟁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는 반정부시위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에르샤드는 야당에 「올리브가지」를 내밀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72년 독립이후 10여차례의 쿠데타와 2차례의 대통령암살 등 피로 점철된 방글라데시의 정치역사와 이로 인한 각 정치세력간의 뿌리 깊은 반목등을 살펴본다면 「민의에의 굴복」이라는 긍정적 분석은 잠시 유보하지 않을 수 없다. 총 21개 정당이 난립한 방글라데시의 야당세력은 크게 3개파로 나뉜다. 초대 대통령 무지부르·라만의 딸인 셰이크·하시나·와제드의 아와미연맹(AL)이 주도하는 8개 정당연합,2대 대통령 지하·울·라만의 미망인 베굼·할레다·지아의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이 이끄는 7개 정당연합,그리고 좌파 5개 정당그룹 등이다.

그런데 야당세력의 중심인물인 「고아」 하시나·와제드와 「과부」 할레다·지아는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관계이다. 할레다·지아의 남편인 지아·울·라만은 하시나·와제드의 부친인 무지브르·라만 대통령 일가를 75년 쿠데타과정에서 몰살했기 때문이다. 에르샤드는 지아·울·라만이 81년 불발 쿠데타때 암살된 1년 뒤에 무혈쿠데타를 통해 당시 집권당인 BNP를 축출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똑같이 야당신세가된 AL과 BNP였지만 극심한 상호 불신으로 87년에 이르기까지 반정부 연합전선을 펼 수 없었다.

지도자간의 개인적 감정도 문제려니와 대중정당인 AL과 밀려난 군부세력 중심의 BNP간에는 구성원간의 정치성향도 크게 차이를 이뤘기 때문이다.

에르샤드는 양정당간의 연합전선이 정부의 유화제스처로 결국 붕괴될 수 있다고 판단했음이 틀림없다.

지난달 27일 비상사태 선포직후 BNP가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자고 주장한 반면 AL측은 군부출신이 많은 BNP가 어부지리를 얻을지 모른다며 주춤거렸던 사실도 에르샤드의 「도박」이 장기적으로 먹혀들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

에르샤드는 50년 다카대를 졸업한 뒤 52년 파키스탄 군대에 입대했다. 독립후 귀국한 뒤 78년 참모총장이 되었으며 82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다.

83년 대통령에 선출된 뒤 86년 재선되었으며 89년 3선에 한해 대통령임기를 제한키로 헌법개정을 한 뒤 오히려 야당측의 거센 사임요구에 시달려 왔다. 총선전 사임의사를 표명했지만 91년 총선에도 출마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유동희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