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가장 적합한 인물”/문국진교수가 물려줘/황교수 “법의학은 인권 옹호하는 학문”사제간의 두터운 정이 아직도 「음지의 학문」으로 인식되는 법의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국내유일의 민간 법의학연구기관인 고려대 법의학연구소의 문국진박사(65)가 정년퇴직하면서 박종철군 사건으로 유명한 제자 황적준교수(44)에게 소장 자리를 넘겨준 사실이 밝혀져 고려대 학생들은 물론 의학계에 상쾌한 변화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고려대는 지난 8월31일 황교수를 조용하고 신속하게 소장으로 임명했다. 이날자로 정년퇴직한 문박사는 명예교수가 된뒤에도 계속 연구소에 들러 황교수와 머리를 맞대고 학위논문을 심사하거나 월례세미나를 갖고 있으며 최근 발간한 「지상아수수께끼의 죽음 그 진상을 파헤친다」 등의 저서로 받은 인세 5천만원까지 장학금으로 황교수에게 맡겼다.
황교수를 후임으로 천거했던 문박사는 『그가 가장 적임자이기 때문』이라는 짤막한 말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서울대의대에서 의학박사,미 콜롬비아 퍼시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문박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 과장,미뉴욕의대 객원교수,학술원정회원,학술원상 수상 등 다채로운 경력과 학문적 업적으로 국내 법의학계를 이끌어온 원로. 특히 문박사는 64년 설립한 고려대 법의학연구소를 20여년동안 소장으로 이끌어왔다.
황교수는 고려대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 1과장으로 재직하던 87년1월 박종철군의 부검소견을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경부압박치사」라고 밝혀 박군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게 해준 주인공.
황교수는 박군의 1주기인 88년초 부검당시의 일기장을 공개,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이 구속되는 등 전면 재수사가 벌어졌었다. 황교수는 이 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사표를 내고 한동안 학계의 낭인생활을 했다.
미국에 연수를 다녀오는 등 방황하던 황교수를 문박사는 법의학연구소로 불러들여 연구를 계속하게 해줬고,황교수는 지난해 2학기에 고려대에 부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75년 법의학연구소를 모태로 설립된 법의학교실의 첫번째 연구 조교였던 황교수를 문박사는 잊지 않았던 것이다.
황교수는 강의를 맡은지 1년만에 법의학연구소 소장겸 법의학교실 주임교수라는 스승의 자리를 넘겨받았다.
『법의학은 인권을 옹호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는 황교수는 『스승의 위업을 어떻게 계승할지 늘 걱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대해 문박사는 『황교수가 박종철군의 죽음을 밝혀낸 것은 법의학자로서의 본분을 다한 것』이라며 『선배로서 음지의학문을 연구하는 그를 돕고 싶을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고려대의대 학생회장 민경일군(23·본과 1년)은 『문박사의 높은 학문과 황교수의 학자적 양심은 우리 의대생들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억울한 죽음이 있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라고 믿고있는 스승과 제자는 지금도 연구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다.<신윤석기자>신윤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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