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씨 동생 패소 재야 법조계의 시각/“5공하에선 소송 현실적 불가능/형식 논리보다 권리 구제 힘써야”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동생 김항규씨가 지난 79년 보안사에 끌려가 강제로 빼앗긴 재산을 보상해 달라고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서울민사지법의 기각결정은 재야 법조계에도 큰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하급심 재판부의 견해차이는 최고법원인 대법원에 가서 매듭이 지어지겠지만 재야 법조계에서는 『법원은 형식적 논리보다 국민의 권리 구제를 우선한다는 입장에서 소신껏 판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 사건처럼 5공 정권의 불법행위로 비롯돼 소송이 제기된 것은 13건의 재산반환소송과 22건의 언론통폐합 관련 소송으로 사안마다 사실관계가 달라질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시효에 관한 법원의 해석에 따라 재판결과에 큰 영향을 받게된다.
이들 5공 관련사건은 ▲DBS의 양도 무효확인 청구소송,TBC의 부동산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 청구소송 등과 같이 빼앗긴 권리 및 재산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경우 ▲한국일보사의 서울 경제신문 강제 폐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TBC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의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 등 2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빼앗긴 권리의 양도를 주장하는 법적근거는 민법 110조의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는 규정과 민법 146조의 「취소권은 추인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내에 행사해야 한다」는 규정을 들수있다.
피해보상 요구의 근거는 민법 750조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민법 766조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내에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가 소멸된다」,민법 166조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는 규정 등이다.
순수한 법률용어로는 전자에서는 제척기간,후자에서는 소멸시효라고 구분하고 있지만 기본적 논리는 마찬가지여서 통칭 소멸시효라 부른다.
이들 소송의 소멸시효 문제는 결국 5공 정권이 지속되는 상태에서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었느냐 또는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었느냐로 귀결되며 이는 바로 5공하에서 이같은 법적구제가 가능했느냐라는 강박상태의 지속여부 문제와 이어진다.
이에대해 조경근변호사는 『5공하에서 현실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웠고 또 법원의 이같은 국민의 권리 구제를 외면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자포자기에 이를 정도였기 때문에 강압적 상태의 지속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강박상태가 해소된 시점에 대해 재야 법조계는 87년의 6·29선언,88년 2월의 6공출범,그리고 언론통폐합에 관해서는 88년 12월의 언론청문회 등 다소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최소한 6공 출범이후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김선수변호사도 『법원의 판결은 현실적합성을 바탕으로 국민 법감정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며 『국민들로부터 정당성을 의심받고 있는 5공의 강박상태를 인정해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이와함께 5공 관련 소송들은 이번에 김항규씨의 경우처럼 개인적 차원에서의 소송과 국가정책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언론통폐합 관련 소송 등으로 나누어 볼수있다.
언론통폐합은 당시의 최고 국가기관인 국보위가 입안,그 집행을 보안사가 맡았던 것으로 5공 헌법부칙 6조3항에는 「국보위에서 제정한 법률과 기타 처분에 대해서는 그 효력을 유지하며 헌법 위반 또는 기타의 이유로 제소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못박아 놓고 있다.
물론 이같은 헌법 조항이 없더라도 5공하에서는 권리구제가 사실상 불가능했지만 특히 언론통폐합의 피해자들은 헌법으로 권리구제의 길을 봉쇄해 놓았기 때문에 아무런 대항수단을 가질 수 없었다.
재야 법조계는 이 때문에 『5공때 언론통폐합의 피해자들이 설사 소송을 제기했다해도 법원은 헌법 부칙조항에 귀속,당연히 기각판결을 내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언론통폐합 문제에 관한한 소멸시효의 기산점은 5공 헌법의 효력이 없어진 때로부터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신재민기자>신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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