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대통령선거 취재를 위해 바르샤바에 모인 한국 특파원들이 가장 자주 드나든 곳은 바웬사나 마조비에츠키의 선거본부가 아니라 「평양식당」이었다.묵고 있는 호텔의 식사는 조악하고 그나마 제대로 된 서양요리를 먹을 수 있는 최고급호텔 레스토랑은 부담스럽고 교포식당은 없는 상황에서 이 레스토랑 「평양」은 무엇보다 반가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곳에는 우리 돈으로 쳐서 4천원짜리 불고기를 비롯,닭볶음·돼지고기구이·냄비찌개 등과 2인분에 7천5백원 정도인 신선로에다 비록 양배추로 담근 것이나마 김치까지 있었다. 위치도 프레스센터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어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평양식당」을 찾은 첫날 한국 기자들은 「신선로」로 시작되는 메뉴에 즐거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가벼운 「실망」을 느꼈다. 북한측은 폴란드와 합작으로 운영하던 이 식당의 요리사 등 북한 종업원들을 동구민주화의 물결 이후 「오염」을 우려,모두 철수시킨 뒤였다.
북한사람들의 철수경위 등을 들어볼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적자지만,소련과의 우호를 위해 사업하는 거지요』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던 모스크바 「평양식당」의 평양 옥류관 출신 여지배인이 새삼 떠올랐다.
그래도 기자들은 끼니 때마다 식당 한쪽 벽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해금강그림 아래에 자리잡고 북한식 음식을 즐겼다.
『북한 친구들 덕 톡톡히 본다』는 농담과 함께. 그리고 혹시나 북한 대사관원 등 북쪽 사람들과 조우하게 될 것을 기대했다.
기자는 지난 2월 12장이 모두 임수경양 사진으로 된 달력이 걸린 모스크바 「평양식당」에서 정복차림의 북한 대사관 무관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임양 얘기로 신나게 떠들던 이 무관은 기자가 『임양사건으로 남쪽의 「진보세력」이 거덜나다시피 했는데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반문하자 갑자기 사고의 혼란을 일으킨 듯 『자주 만납세다』며 슬그머니 자리를 떠버리는 것이었다. 기자들에겐 어디에서든 북쪽 사람들과 얘기해보는 것은 즐겁고 유익한 경험이다.
그러나 바르샤바를 떠나는 날까지의 우리의 기대는 채워지지 않았다. 북쪽 유학생 등 일반인들은 모두 소환됐고,대사관원들마저 「자본주의자」들을 한층 반가이 맞는 「평양식당」을 찾지 않는 듯했다.
마지막 끼니 때,웨이터의 주머니에 달러를 찔러주고 「평양 고려호텔」 마크가 찍힌 접시를 하나씩 「기념」으로 집어왔다. 폴란드 웨이터는 뜻밖의 횡재에 흥분한 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자는 왠지 허전했다. 호텔방에서 꺼내 본 북한 접시는 또 왜 그리 초라한지 측은한 마음마저 들었다.<바르샤바에서>바르샤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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