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국정감사가 어제부터 시작되었다. 국회의 장기표류로 정기국회 회기를 상당부분 허송함에 따라 제헌국회 이래 최단기 감사를 치러야 할 판이다.갈 길은 먼데 해가 서산에 기운 꼴이니 이것저것 건드리지만 말고 국민의 관심과 이해가 걸려 있는 큰 문제만 집중적이고 엄정한 자세로 효율적인 감사에 임해줄 것을 부탁한다.
거여의 등장 이후 첫번째인 이번 국감에서도 국정감사에 임하는 여야의 자세와 목표는 초반부터 현격한 거리가 있다. 평민당은 민방의 지배주주 선정의혹설,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추곡가 수매 및 우루과이라운드협상대책 등에 따른 농정부재,재벌의 부동산투기와 여신관리,범죄전쟁 선포 후의 치안부재,증권시장 조작설 등 6공 정권의 비정·실정 및 각종 비리와 부도덕성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민자당은 노태우 대통령의 선거공약사업과 민생안정 다짐을 뒷받침하는 정책감사에 역점을 두면서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과 민방의혹 문제 등을 선별적으로 규명할 움직임이다.
국정감사 시즌을 맞을 때마다 국민이 가장 꺼리고 싫어하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일부 의원들의 인기를 의식한 얄팍한 폭로주의,한탕주의이다. 국회의원이 면책특권을 가졌다고 무작정 근거도 없이 폭로를 위한 폭로에만 매달리는 작태는 단연 지양돼야 한다. 국민 모두가 궁금해하는 사안일 경우 합리적인 논거와 확실한 근거를 갖고 정부를 추궁,당력을 총동원해서라도 끝까지 철저하게 규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에서처럼 감사 때면 나라 전체가 뒤흔들릴 정도로 의혹과 비리에 대한 갖가지 폭로와 공격으로 정국을 소연하게 했다가도 국감이 끝나면 흐지부지했던 관례를 이번엔 재연하지 말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참다운 국정감사는 정부의 잘못된 예산과 법의 집행,그리고 행정력의 오·남용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주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전적인 정치감사를 지양,대안까지도 제시하는 정책감사를 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감사를 받는 정부도 성실하고 솔직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감사기간만 지나면 된다는 생각으로 부실한 자료를 제출하고 실정을 감추는 데만 급급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감사는 국민이 실시하는 행정부의 법적,정치적 건강진단이란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해마다 새해 예산심의에 앞서 모든 국회의원들이 나서 행정부 살림에 대한 감사를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도중 16년간의 공백이 있었기는 하나 제헌국회 때부터 채택,실시해온 국정감사는 우리 의정에 있어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중요 감독권으로 국민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다. 어느 면에서 우리의 민주정치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명맥을 이어 온 것은 국정감사제도 등의 엄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국정감사가 활발하게 실시됐을 때,다시 말해 국회의 권능이 제구실을 했을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생기를 유지했고 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국회는 앞으로 8일 남은 감사를 국민과 함께 감사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지난 88년과 89년 두 해의 감사중 드러났던 무리한 자료제출,중복감사,증인제도의 비효율적 운영 등의 문제점들이 이번 감사기간중에는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회가 정부를 감사하는 동안 국민은 국회를 감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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