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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병」과 지도력/박승평(아침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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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병」과 지도력/박승평(아침조망)

입력
1990.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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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여인」이라 불린 대처 영국 총리의 퇴장을 보며 가슴에 와 닿는것이 몇가지 있었다. 그 첫째가 지도자의 자질에 관한 것이고,두번째가 가정교육의 소중함,그리고 세번째가 가정은 물론이고 나라마저 위기에서 구해내는 서릿발 기개의 어머니상에 대한 그리움이었다.비록 지나친 옹고집으로 막판에는 인기가 떨어지고 시대의 변화마저 수용못해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지만 대처의 으뜸가는 자질은 역시 원칙을 고수하는 불퇴전의 신념과 용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대처가 처칠과 함께 20세기의 명재상으로 꼽히는 것도 소위 「영국병」으로 알려진 고질에서 나라를 건져낸 치적 때문인데,그같은 업적이야말로 그녀의 무쇠같은 신념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우리도 만성적인 인플레와 파업으로 상징됐던 영국병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도 그와 비슷한 「한국병」을 앓기 시작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국병이란 능력을 무시한 지나친 평등과 복지요구 및 파업만능주의가 영국 사람들의 버릇과 사고방식을 공짜 근성으로 내몰아 경제가 파탄에 이르고 사회가 혼란에 빠진 것을 일컬음이었다. 영국병으로 사람들은 돈이란 벌기와는 상관없이 쓰고 볼 일이고,생산은 침체해도 임금은 올려놓고 볼 일이라는 잘못된 생각,즉 공짜근성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지난 79년 대처는 대권을 잡으면서 『영국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겠다』고 선언,철저한 개인주의·능력본위의 경쟁,엄격한 도덕과 질서유지라는 신념으로 집권 11년간 영국병 치료에 나섰으며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저돌적으로 관철시켰다. 그같은 비타협적 신념이 영국병 치료에서 기적을 일으켰던건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보다 우리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대처의 그같은 자질과 용기가 식료품 가겟집 딸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받은 가정교육에서 일찍이 심어졌다는 사실이다. 어린시절의 믿음을 끝까지 관철해낸 대처의 행동에서 우리는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갖출 자질과 함께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어떤 대정당도 하고자 하는 바에 관해 확고한 신념에 바탕을 두지 않고서는 살아 남을 수 없다』『어떤 사람은 내가 가사에 관한 훈계나 집집마다 전해지는 우화일뿐 이라지만 그 우화들이 많은 금융가를 파탄에서 구했고,나라를 위기에서 구출했다』『우리는 할머니다』『나는 계속 싸웠다. 그리고 싸워서 이겼다』­등등의 대처의 어록을 읽다보면 어느새 우리가 잊고만 있던 품격과 기개의 옛 어머니상을 떠올리게도 된다.

사실 우리에게도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씨 같은 여걸이 있었다. 식모살이를 하면서까지 아들의 옥바라지를 했고,아들이 회갑에 이르도록까지 회초리를 들며 잘못을 나무랐고,자신의 생일잔치 비용으로 독립투쟁에 쓰라며 권총을 사서 내놓았던 어머니였던 것이다. 곽씨와 같은 어머니가 있었기에 백범과 같은 탁월한 지도자가 나왔고,임정도 온갖 어려움속에서도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최근 지도자의 자질에 관해 하버드대의 경영학 교수와 웨스트포인트 교장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생각이 난다.

이들이 지적했다는 지도자의 요건은 첫째가 지도자는 국가적 변환과 위기때 헤쳐나갈 길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길이란 장래에 대한 비전과 돌파전략을 일컬음으로 통상적인 관리행위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두번째 지도자의 요건은 제시한 길로 국민들이 따르도록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같은 능력은 강한 신념과 공정성과 자기희생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이같은 관점에서 대처를 비추어보면 그녀의 국가지도자로서의 영광과 최근의 퇴장이 이해된다. 즉 그녀는 영국병을 벗어날 길을 제시하고 강력한 원리원칙과 신념으로 국민을 이끌었기에 역사에 족적을 남길 수 있게 됐지만 최근의 변화를 수용하는데는 실패,동기부여 능력의 한계를 맞아 용퇴하는 자기희생을 감수했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불안·불신·불만의 삼불시대라느니,무정견·무신념·무용단의 삼무시대라는 소리가 끊일새 없는 최근의 우리 사회이다. 임금은 배나 뛰었지만 생산성은 퇴보하고,수출은 적자인데 과소비로만 줄달음치는 「한국병」의 고질화 추세 앞에서 한시대의 지도자로서 교과서적 수범을 보였달 수도 있는 대처의 퇴장을 보는 우리의 심경은 어쩐지 착잡하기만 하다. 우리에게도 오늘과 같은 위기를 대처와 같은 신념과 원칙으로 헤쳐나가고,그러다 한계에 이르면 제발로 산뜻이 물러나는 그런 지도자는 왜 없는 것일까.

차라리 소신없이 보신이나 권력싸움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비 지도자들을 마냥 기다리기 보다 이제부터라도 어머니나 아버지들이 심기일전,집안이나 잘 다스리며 가정교육으로 장래의 지도자를 차근차근 키워내는 게 더 현명하고 마음 편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하는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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