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인니의 「창의성운동」/국민은 시큰둥(세계의 창)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인니의 「창의성운동」/국민은 시큰둥(세계의 창)

입력
1990.11.26 00:00
0 0

◎경제 활성화 위해 수하르토 제창/야당은 “정치공작이다” 경계눈길집권 24년째인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은 요즈음 입만 열면 창의성의 중요함을 강조하기에 여념이 없다.

대국민 담화를 통해,또는 공무원들에 대한 훈시에서,심지어는 국제회의에 참가한 외국대표들을 환영하는 자리에서까지 그는 『좀더 적극적으로 창의적인 의견을 개진하라』고 시도 때도 없이 다그치고 있다.

고 수카르노가 제창했던 이른바 「교도민주주의」라는 권위적인 통치이념에 깊숙이 젖어온 인도네시아의 가부장적 정치풍토를 고려할 때 수하르토 대통령의 이같은 언행은 사뭇 파격적인 것이다.

수하르토가 창의성 발휘를 부쩍 심하게 재촉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 중순부터였다. 그는 한 연설에서 『지금부터 정부는 국민들의 다양한 견해를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청취할 준비가 돼있다』면서 『상부로부터의 지침만 기다리는 사람은 앞으로 이 나라를 봉건주의 시대로 후퇴시키는 자로 간주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이 발언이 있은 후 공무원 사회에서는 「문화적 충격」으로까지 표현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모든 공직자가 일손을 놓고 그 발언의 의미와 여파를 감잡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혼란은 수도모 정무장관이 수하르토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후속조치로 언론검열제 폐지를 발표하면서부터 표면상 수습되기 시작했다. 이후 전국민의 창의적인 의견개진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들이 잇달아 취해졌다.

외신보도에 대한 통제가 완화됐고 반정부 인사와 단체에 대한 취재가 허용됐다. 무엇보다 국영매체들에 대한 보안기관의 「보도지침」이 적어도 겉으로는 철회됐다.

그런데 일반 국민들은 정부의 야단스런 의식개혁운동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이 운동을 의욕적으로 진두 지휘하고 있는 수하르토를 몸달게하고 있다. 야당 및 「청원50」그룹등 반정부단체들은 정부의 갑작스런 민주화 개혁조치를 아예 정치공작 내지 위험한 함정으로 간주하고 경계와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사실 수하르토 정권은 지난 78년에서 80년 사이에 잠시 언론자유를 허용했다가 언론계 대학가 심지어 군부내에서까지 정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자 이에 대한 탄압을 강화했던 전력이 있다.

그러나 수하르토 정권이 밑으로부터 보다 창의적인 견해가 분출하기를 절실히 고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창조적인 정책마련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최근 2년간 6% 이상의 실질성장률을 기록하는등 도약의 시점에 와 있지만 동시에 한계점에 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복잡하고 경직된 정부내의 의사결정 과정 때문에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순발력 있게 마련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이렇듯 경제적인 필요성에서 일종의 신사고운동을 요란하게 벌이고 있는 수하르토 정권은 사실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경제발전을 위한 창의적인 견해가 밑으로부터 기탄없이 개진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정치개혁이 수반되어야 하는 데 전혀 그럴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권력 핵심층내에선 오히려 오는 92년선거에서 수하르토가 다시 집권할 수 있도록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새 선거법은 지난 87년 선거 당시 야당쪽에 많은 군중을 모이게 했던 옥외집회등 공식적인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해 야당에게 매우 불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최근 정부가 학계에 위촉해 마련한 「93년 인도네시아 국정개요」는 인도네시아의 완전 민주화를 위한 5개년계획의 시작연도를 오는 99년으로 설정했다.

정권유지만을 염두에 둔 수하르토 정권의 이같은 이중적인 태도는 결국 정부가 펼치는 모든 정책에 대한 냉소주의를 낳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지식인층은 정부의 창의성 발휘요구에 침묵으로 답하고 있다. 반둥공과대학 학생들은 최근 학생회 부활을 허용한 정부 결정을 스스로 거부했다.

창의적인 사고마저 중앙통제식 지시만으로 가능하다고 믿는 수하르토 정권의 시대착오적인 발상은 세계적인 자유화시대를 맞은 다른 몇몇 나라의 정권들도 역시 범하고 있는 오류의 한 예일 수도 있다.<김현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