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학생 초청 용의… 개방에 도움”/한국계 우수… 소수민족간 많은 대화 필요/이붕등 중국 실권자와 교분… 6·4후 발길 끊어/학생데모 한계넘지 않고 균형 유지해야지난 7월 아시아계로서는 최초로 미국 유수의 명문대학인 캘리포니아대(버클리) 총장에 취임한 티엔·창린 박사(중국명 전장림·55)가 22일 서울에 왔다.
미 공학계에서 열전도분야의 최고권위자로 손꼽히고 있는 티엔 총장은 23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버클리대학 동문회 초청으로 한국 학계와의 협력강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내한했으며 25일 이한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앞으로 북한학계와도 학술교류의 길을 트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 70년대 초부터 중국 최고실권자인 등소평을 비롯해 조자양 전 총서기 강택민 현 총서기 이붕 총리 등 중국지도자들과도 두터운 교분을 맺어온 티엔 총장은 『지난해 6월 천안문사태 직후 이붕 총리에게 항의서한을 보내고 그의 사임을 촉구한 바 있다』고 강조하고 『당분간 중국에 발길을 끊겠다』고 말했다.
아시아계 이민1세대로서 명문 버클리대 총장에 선출된 소감은.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대만에서 대학까지 마친 이민1세가 버클리같은 유수대학의 총장에 뽑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아시아계라는 인종적인 요소는 이번 총장 선출과정에서 별로 작용하지 않았다. 장장 31년간 버클리대 교수직을 지낸 나의 경력과 연구업적 그리고 미국에서 대학총장의 적령기로 보는 50∼60세안에 내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 덕을 본것 같다』
아시아계로서 그렇게 입신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다.
『못견디게 힘들었던 것만은 아니다. 지난 56년 도미해서 켄터키주 루이스빌대학원에 입학했을 당시만 해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적 분위기를 강렬하게 느꼈다.
루이스빌에 도착해보니 식당과 화장실 음료대는 물론 버스까지도 「백인전용」구역이 따로 지정돼 있었다. 교수들도 대부분은 친절했지만 유독 백인교수 한분이 나같은 유색인종에게 불친절하게 굴었다. 다른 학생들 앞에서도 나에게 「차이나맨」이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미국에서는 그같은 인종차별 풍조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뉴욕이나 시카고 등 대도시에서는 인종간의 갈등이 아직도 심각하다고 듣고 있다.
『인종간의 긴장은 아시아계나 히스패닉계 등 소수민족들이 보다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한 경쟁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또한 여러 소수민족간에 보다 많은 상호이해와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앞으로도 인종간의 갈등은 계속되겠지만 나는 이것을 미국사회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해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해하고 싶다』
버클리대에 한국학생은 얼마나 되나.
『약 3천명선이라고 알고 있다. 버클리대에는 학부학생이 2만1천여명,대학원생이 9천명 정도인데 이중 28% 가량이 아시아계이다. 한국·중국 등 아시아계 학생들은 대부분 성적이 우수하고 컴퓨터공학이나 생화학 기계공학 및 물리학 등 소위 인기학과에 몰려 있다』
버클리대는 입학시 인종에 따른 쿼타제를 적용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신입생 선발에 있어 학교성적순에 따라 1차로 50%를 뽑는다. 나머지 50%는 학교성적을 참고로 하고 사회적·경제적으로 불우한 가정출신의 학생이나 체육·음악·태권도 등 예능 특기자들에게 특혜를 준다. 그러나 대학원의 경우 공과대학 같은 일부대학에는 아시아계 지원자들이 몰리기 때문에 유학생들의 수를 30%선에서 조정하고 있다』
한국에도 각계에 버클리출신 인맥이 우뚝 서 있지 않은가.
『그렇다. 한국의 「버클리 마피아」는 이공계를 비롯해 정계·재계·학계 등 다방면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중 정계에는 박준규 국회의장 조순 전 부총리 나웅배 전 상공장관(현 민자당 의원) 등이 있고 업계에는 조중건 대한항공 사장등 다수,학계에도 하용출 서울대교수 안병준 연대교수 한승조 한승주 교수 등 수없이 많다』
버클리같은 명문대에서 북한 학생들을 받아들일 용의는 없는가.
『북한과의 학술교류는 좋은 일이다. 그것은 북한의 개방을 돕고 장차 다방면의 협력을 증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천안문사태 이후 중국정부를 비난했었지만 중국과의 학술교류는 강력히 추진할 계획이다』
중국지도층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데.
『조자양 이붕 등과 친하다. 또 강택민 서기장과도 과거 여러차례 만난 적이 있다. 등소평도 잘 안다. 나는 천안문사태 이후 현 지도층에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했다. 이붕 총리에게 사임하는 게 좋겠다는 편지도 냈다. 그후 중국에는 발길을 끊었다. 나는 중국 무한에서 태어나 상해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국공내전이 일어나 49년 대만으로 피란나와 그곳에서 국립대만대학을 나왔다』
버클리는 60년대 반전·반핵데모로 유명했다. 요즘은 어떤가.
『어제(22일) 버클리에 있는 비서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그날은 데모가 2건밖에 없어 캠퍼스가 조용했다는 보고였다(웃음). 합법적 데모는 나쁘지 않다. 우리는 학생데모가 어느 한계를 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이상석기자>이상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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