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노선 투쟁극복 중도선회/대처실정 업고 여론지지 앞서/전격 사퇴로 일격당해… 보수당과 정책차별성 줄어대처의 퇴진은 지난 11년6개월 동안 야당의 위치에 머물러왔던 영국의 노동당에 재집권의 길을 열어 놓을 것인가.
지난 79년 캘러헌 총리의 노동당정부가 총선패배로 물러선 이후 영국 노동당은 좌우파간에 극심한 노선투쟁에 휘말려 한동안 재집권은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결코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없는 정책을 펴온 대처가 3기를 연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야당인 노동당의 극심한 분열상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83년 당수에 취임한 닐·키녹은 극좌파에 대한 숙정작업을 통해 당내분을 마무리짓고 89년 전당대회에서는 핵무기 일방적 폐기안을 수정하는등 중도노선을 지향,영국 노동당을 정권을 넘볼 수 있는 위치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중도노선 표방이후 노동당은 올들어 보수당의 주민세도입 강행등 실정을 배경으로 79년 총선패배 이후 오랜만에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을 앞지르기 시작했으며 올 봄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압승함으로써 재집권의 가능성을 한층 높였었다.
보수당이 대처에 대한 당내 반란으로 내홍에 시달리고 있을때 즉각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한 것도 당장 총선이 실시될 경우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의표를 찌른 대처의 사임으로 상황은 불투명해져 버렸다. 닐·키녹이 가장 바란 것은 대처가 당수경선에서 「상처투성이의 승리」를 거두고 오는 92년 6월 총선때까지 총리직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1인 장기집권에 따른 국민들의 염증을 배경으로 재집권의 숙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키녹과 노동당의 계산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도노선을 채택한 노동당은 오랫동안 잃어왔던 중산층의 지지를 얻는데는 성공했으나 그대신 보수당과의 정책상의 뚜렷한 차별성을 잃어버렸다.
물론 노동당은 대처의 보수당과는 달리 유럽공동체(EC)를 떠나서는 영국의 미래가 있을 수 없다는 인식아래 어느 정도 대 EC경사정책을 펴온 게 사실이다. 또한 대처가 주권을 이양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끝까지 반대한 유럽 단일통화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 왔다. 그렇다해도 키녹 역시 EC의 정치적 통합문제에 대해서도 미온적이기는 보수당과 마찬가지였다. 영국 정가의 대표적 유럽주의자인 키녹이지만 EC가 협력관계를 조정하고 상호 적대감을 해소하는 느슨한 공동체이상을 넘어서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취해온 것이다.
키녹의 노동당은 EC문제와 관련,보수당과 뚜렷이 구별되는 정책을 섣불리 제시하기 보다는 보수당이 EC문제를 놓고 사분오열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비켜서 있자는 주의였다. 유럽대륙에서 떨어져 있는 섬나라인 영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해 볼 때 정도를 넘어선 「유럽통합」추구는 여론의 반발을 불러 일으킬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기총리 경선에 나선 보수당의 3인은 모두 대 EC문제에 관해 전임대처의 비타협적 자세와는 달리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제 EC문제와 관련한 노동당의 반사이익은 대처의 퇴장으로 기대할 수 없게된 셈이다.
이러한 노동당의 딜레마는 내정분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키녹은 지난 10월 전당대회에서 중산층을 겨냥,교육문제에 최우선순위를 두겠으며 복지문제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을 당의 정책목표로 삼겠다고 밝혔었다. 대처가 총리직에 머물렀다면 이러한 정책은 보수당의 정책과 차별성을 지녔을 것이다. 그러나 차기총리 선출여부와는 관계없이 보수당의 경제정책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존·메이저는 공공지출에 대한 그간의 철저한 통제를 완화하고 소외계층에 대한 보다 많은 배려를 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한 존·메이저는 보수당원으로는 드물게 런던빈민가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로 대처집권시 소홀히 취급됐던 빈민계층의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있는 형편이다. 89년 전당대회서,산업정책분야에서 정부간섭을 완화할 것을 정책목표로 제시한 노동당이고 보면 대처의 후임총리가 지향하는 보수당의 정책목표와 노동당의 정책과의 차별성은 더욱 좁혀질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대처의 퇴장은 집권을 노리는 노동당에 「완화된 대처리즘」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비전의 제시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메이저가 출마의 변에서 밝힌 바 있듯이 차기총선에서 승패를 가름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경제문제에 대한 새로운 비전제시에 달려 있다.
그러나 대처가 집권 11년반동안 보수당을 중도우파에서 우파정당으로 변질시켰듯이 같은 기간에 좌파정당이었던 노동당은 중도파정당으로 변모돼 버렸다.
따라서 91년 차기총선에서 노동당이 집권한다 해도 좌파정책으로의 선회는 불가능해졌다는 게 분명한 사실로 지적되고 있다.<유동희기자>유동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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