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역사상 일찍이 보지 못했던 갖가지 기록을 세운 대처 총리의 퇴장에서 우리는 새삼 거대한 세계의 흐름을 실감하게 된다. 마거릿·대처 총리는 영국 역사상 최초의 여자 당수였고,처칠 이래 처음으로 세 번이나 총리로 선출됐고,20세기 들어 최장기 집권의 기록을 세웠다.그는 무엇보다도 「철의 여인」으로 세계에 알려져 왔다. 79년 노동당 정부가 남긴 인플레와 노사분규의 유산을 딛고 일어선 그는 이 「영국 병」을 다스리는 데 타협없는 강경정책을 휘둘렀었다. 또 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전쟁에서 승리해 보수적인 영국의 애국주의와 사기를 부추기는 데 성공했었다.
이 「철의 여인」이 11년반 만에 퇴장하게 된 것은 섬나라 영국의 사건이라기보다는 탈냉전과 「새유럽」의 태동과 관련된 국제적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
대처 총리의 「내리막」은 지난 5월 주민세의 강행으로 표면화하기 시작했었다. 게다가 인플레는 독일이나 프랑스의 3배인 11%에 가깝게 뛰어 보수당 정부의 인기가 눈에 띄게 떨어졌었다. 지난 봄 이래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은 야당인 노동당보다 늘 5∼19포인트 뒤져왔다.
대처 총리의 퇴장에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은 유럽공동체(EC)에 대해 영국의 영광된 「주권」을 지켜야 된다는 고집이었다. 구체적으로는 92년초부터 실시하기로 EC 11개국이 합의한 유럽 단일통화와 유럽 중앙은행의 창립에 유일하게 반대하고 나선 것이었다.
영국 보수당내의 유럽공동체 참여도를 둘러싼 논쟁경위를 본다면,영국이 뒤늦게 EC가입을 결정했던 17년 전과는 유럽의 상황이 딴판이 됐음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대처 내각의 원래 각료로 유일하게 남아 있었던 제프리·하우 부총리는 사표를 내던지고 EC가입을 거부했던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대처 총리를 비판했다.
거대한 통일독일이 유럽대륙 복판에 모습을 드러낸 지금 영국보수당 안에서도 이제는 「영광된 고립」이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이 우세해지고 있다. 대처의 후계경쟁에 나선 허드 외무장관 등 세 후보도 모두 「고립」보다는 EC에의 적극참여를 보다 유연하게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처 총리의 퇴장은 미국에서 레이건 대통령의 시대가 끝난 것과 함께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두 보수주의의 기수가 퇴장함을 뜻한다. 그 과정에서 정권을 담당하는 정당의 기수가 여론의 향방에 따라,그리고 정정당당한 정책토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영광된 전통을 보게 된다.
또한 최장기집권의 신화도,바로 「장기집권의 오만」이라는 함정 때문에 결국 깨질 수밖에 없다는 어쩔 수 없는 인간적 한계를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투표를 포기하고 스스로 물러나는 이 「철의 여인」에게 세계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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