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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차례 전쟁」/김창열 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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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차례 전쟁」/김창열 칼럼(토요세평)

입력
1990.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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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통일문제는,단순한 통일방안적 차원에서가 아니라,민족사적 차원에서 접근할 때,한국전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그 출발점이 된다…』이것은 청와대 정책조사보좌관인 김학준 박사가 지난 5월에 나온 「북한의 인식」 총서12 「한국전쟁을 보는 시각」(을유문화사)의 책머리 논문에 쓴 말이다. 이말은 통일이라는 지상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6·25가 갖는 각별한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나는 김박사의 이 말을 전적으로 동감한다. 아무리 통일의 과제가 끽긴하더라도 분단의 비극 그 자체를 없었던 일로 치부하는 「비역사적」 또는 「탈역사적」통일은 진정한 통일일 수가 없고,또 그런 통일은 있을 수도 없는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에서 나는 근래에 나온 북한 문건에서 다음 두 대목을 관심 깊게 읽는다.

그 하나는 한 소 수교에 앞서 지난 9일 평양을 방문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에게 전달했다는 북의 비망록이다. 소련의 대한 수교를 나무라는 이 비망록 제2항에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함께 조선을 분열시킨데 책임있는 나라」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관심거리는 지난 9일 북한 중앙방송이 내보낸 「시사논단」의 「논평」이다. 이 「논평」은 우리 정부의 통독조사단 파견을 비난하면서,한반도와 독일의 분단상황이 다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조선의 북과 남은 처음부터 첨예한 대결상태에 놓이게 되었고,게다가 한차례 전쟁을 겪고 오늘도 불안전한 정전상태에 있다』고 한 것이다.

이들 언급은 모처럼 북의 분단사 인식의 일단을 엿보게 한다. 위 인용문에 나타난 그 인식의 기본틀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한반도는 강대국간의 대립구조­외세에 의하여 분단되었으며 한국전쟁이 분단을 극화시켜 오늘껏 풀길 없는 적대관계를 빚어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이 정도의 공통인식만 해도 소중한 것일 수가 있다. 그러나 정작의 문제는 오히려 여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우리 분단사의 현실이다. 분단외세의 문제는 일단 남북의 공통인식을 바탕으로 청산할 수가 있다 하더라도,남북이 바로 당사자였던 한국전쟁 청산은 뛰어넘기 어려운 깊은 골임에 틀림없다. 기습남침을 당한 우리로서는 그것이 단순한 「한차례 전쟁」일 수만은 없고,어쩔 수 없이 전쟁책임 문제와도 연관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김박사가 제기한 바 『한국전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물음의 함축은,그래서 그가 말한 바 「민족사적 차원」에서 한없는 무게를 지닌다. 또 그 물음은 한국전쟁의 상처가 남북대화­통일의 길목에서 언젠가는 제기되고 청산되어야할 것임을 시사한다.

지금까지의 남북대화는 한국전쟁이라는 귀문을 용케 피해 왔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모양을 바꾸어 줄곧 제기되어 왔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북한이 평화협정으로 정전협정을 대신하자고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바로 저들 나름으로 한국전쟁을 청산하겠다는 뜻이다. 북한이 일본을 향하여 강점 36년의 사죄와 배상은 물론 전후 45년의 배상을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우리의 북방정책에서도 분단사­한국전쟁의 청산은 당면한 과제가 된다. 대소·대중 관계의 수복이,우리가 겪은 분단사의 아픔을 잊어버리는 데 바탕을 둘 수는 없는 것이다. 북방정책과 대북 관계의 연관을 생각할 적에 더욱 그러하다.

이 문제는 지금 노태우 대통령의 소련 방문을 앞두고,보다 절실하게 제기되고 있다. 정부도 어떠한 형태로건 한국전쟁과 KAL기 격추사건의 문제를 소련측에 제기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 제기에 대한 소련측의 반응이 어떤 것일지는 알 수가 없다. 「과거는 과거」라고 얼버무리려 들지도 모른다. 또 우리 정부가 이 문제에 얼마나 역점을 두고 추진할지도 미심쩍다. 그래서 다음 두가지를 따로 적어두고 싶다.

첫째는 한국전쟁에 대한 소련의 책임이다. 한 때 6·25남침설을 부인했던 수정주의 학자들은 소련이 6·25개전일도 몰랐다는 주장을 폈었다. 이른바 이 「소련 무지설」은 흐루시초프 회고록으로 일단 부인이 된바 있고,근래 한국일보에 연재중인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작전국장 유성철씨의 「나의 증언」으로 그 허구가 확증되고 있다. 재소 동포 3세인 그는 6·25 남침계획이 소련군에 의하여 러시아어로 작성되었으며,당시 소련군 고문관이 인민군 중대단위에까지 배치되어 있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한때 무력말살을 기도했던 한국과의 상호협력을 기대하는 소련 사람들에게 줄 충고는 『모스크바…가 진정으로 종합적인 한국전쟁사를 작성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과도 일치함을 스스로 깨닫는 것』(J·폴락=랜드연) 한마디로 그친다.

다음은 우리 정부를 위한 당부다. 노대통령의 소련방문은,그 시기·대가 등으로 하여 말이 없지 않으나,그 성과가 대북·대중관계에 미칠 영향이 매우 클 것은 틀림이 없다. 이 경우 특히 한국전쟁과 KAL기 격추사건을 어떻게 정리하고 청산하느냐의 귀추는,앞으로 남북관계의 위상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6·25와 KAL기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태도가 국내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입발림이 아니기를 바란다. 어느 면에서,또 길게 보아서는,이 문제의 귀추가 경협액 얼마의 흥정보다 더 큰 안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역사」「탈역사」가 아닌 그야말로 역사적인 한소관계의 전개를 기대한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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