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EC정책 「비타협」탈피 확실/대미 경사 완화… 나토변화 계기/경제등 국내정책은 「대처 없는 대처시대」 지속 전망마거릿·대처 총리의 사임은 80년대 영국을 이끈 「대처리즘」의 퇴장과 변화하는 영국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대처리즘은 대내적으로는 국가 간섭과 국가 의존을 동시 배제하는 철저한 자유시장경제원칙의 옹호,대외적으로는 친미와 유럽의 독자세력으로서의 영국의 위상고수였다. 대처리즘의 퇴장배경과 대처 이후의 영국의 진로를 2차례에 걸쳐 분석해 본다.<편집자주>편집자주>
대처 총리를 사임으로 몰고 간 배경에는 1백70만명에 달하는 실업자,경기침체,그리고 현대판 인두세로 비판받아온 주민세 신설 등 국내요인도 무시할 수 없으나 결정적 원인은 대처의 보수주의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국제정세,특히 유럽의 급변에 더이상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처의 전기작가인 마틴·자크씨는 실용주의자로 자처해온 대처 총리가 영국인에게도 유럽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여론과 단절된 「완고한 사상가」가 된 끝에 그녀의 퇴임을 자초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85년부터 가속화되기 시작한 EC통합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유럽관은 주권의 상실을 결코 인정치 않는 민족국가의 개념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었다. 그러나 주권을 선거되지 않은 EC에 이양하는 것을 비민주적인 것으로 비판한 그녀의 유럽관은 대부분의 유럽지도자들과는 거꾸로 가는 것이었다. 지난 11월28일 로마에서 개최된 유럽공동체(EC) 정상회담은 그녀의 비타협적 자세를 극명하게 노출시켰다.
영국은 EC 12개 회원국중 유일하게 향후 10년내에 유럽중앙은행과 함께 유럽 단일통화를 창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 유럽경제통합 일정에 합의하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대처의 극단적 비타협적 노선은 새로 탄생될 통합유럽으로부터 배제될지도 모른다는 기업인들의 우려를 불러 일으켰고 이같은 여론을 배경으로 당내 반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전개를 고려해 볼 때 대처의 후임총리가 누가 되든지간에 영국의 대 EC정책이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오는 27일 2차 당수경선에 출마한 더글러스·허드와 존·메이저는 근본적으로 대처주의자이지만 EC통합에 관한한 진보적인 입장을 취해온 인물로 간주돼 왔다.
헤슬타인의 경우는 노동당원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당내에서 제기될 정도로 열렬한 EC 통합주의자이다. 벨기에의 한 고위관리는 영국과 EC파트너 각국들의 관계를 흑백관계로 묘사해온 대처와는 달리 이들 3인은 협상의 여지가 많다고 평가하면서 단일통화문제에도 전진적인 자세를 보일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3인 모두 헬무트·콜 독일총리의 「유럽합중국」 개념에는 결코 동의하고 있지 않다. 경제적 통합을 넘어선 EC의 정치적 통합문제에 관해서는 여전히 소극적인 것이다. 따라서 대처 이후의 영국은 EC통합에 관해 보다 유연해질 것이지만 전통적으로 EC에 대해 취해온 접근방식,즉 유럽대륙이라는 거창하고 때로는 막연한 구상에 의심을 품고 실제적인 세부사항에 관심을 집중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대처 총리의 퇴장이 갖는 또다른 의미는 미국이 대 유럽 정책의 열렬한 옹호자를 잃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은 미·유럽의 기존 유대관계를 견지하기 위해 나토의 역할보존을 주장해 왔고 대처는 미국의 이러한 구상에 둘도 없는 강력한 지지자였다. 파리에서 개최된 전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서도 대처는 CSCE체제를 나토체제를 대체하는 안보기구체로 발전시키자는 소련의 구상에 제동을 걸었었다.
대처는 사퇴를 발표하던 당일 페르시아만에 영국군 증파를 결정하는등 미국의 대외정책에 끝까지 「충성」을 바쳤지만 대처의 후임자가 미국의 대외정책에 그녀처럼 버팀목 구실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무리이다. 이렇게 볼 때 미·유럽관계 및 나토의 위상이 대처의 퇴임으로 큰 변화를 겪게될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내정책과 관련해 본다면 보다 완화된 대처리즘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처의 사임은 분열위기에 빠졌던 보수당을 단결시켰고 이는 의회에 제출된 내각 불신임안이 압도적 다수로 부결된데서도 입증된다. 허드와 메이저는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마거릿·대처의 업적을 보호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헤슬타인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 주민세를 완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자신 백만장자로서 시장경제를 찬성하고 있다. 또한 닐·키녹이 이끄는 노동당은 대처의 정책이 과격한 것이라고 비판해 왔지만 대처리즘을 근본적으로 대체할 정책방안을 아직껏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같은 사정을 종합해 볼 때 대처 이후의 영국은 변화하는 국제조류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드골 이후 퐁피두에 의해 「드골없는 드골시대」가 지속됐듯이 당분간은 「대처없는 대처시대」를 지속할 것으로 보아 큰무리는 없을 것이다.<유동희기자>유동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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