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귀환」은 거처 이견… 미결/초기 감정적 혼돈… 국회증언 후 안정 찾아/방문객 상대 설법 소일… 망각의 때 기다려전두환 전대통령이 23일로 백담사 은둔 2년을 맞는다.
전 전대통령은 지난 88년 11월23일 연희동 사저에서 5공 비리와 관련해 사과와 유감을 표명하는 짤막한 성명을 발표한 뒤 홀연히 산사로 떠났다.
그의 백담사행은 5공문제가 처리될 때까지 2∼3개월만 산사에서 칩거해달라고 6공 핵심부의 요청에 의해 이뤄진 것이나 어느새 세번째 월동채비에 들어갔으며 작년말의 국회증언 이후에도 하산여부가 불투명해 그의 근황과 향후 거취는 여전히 국민의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전씨 자신도 향후 거취등 하산여부에 대해 일체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데다 6공정부 마저 『하산여부는 전적으로 백담사측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밝히고 있어 하산을 둘러싼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난제임을 짐작케하고 있다.
전씨 내외는 자신들의 은둔생활 2년을 「반승반속」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은둔의 2년은 전씨 내외에게 인고와 고통의 세월이었음이 분명하며 이같은 정경은 그의 측근들이나 백담사를 찾는 신도들의 입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전씨 내외의 은둔생활은 작년말의 국회출석 증언까지를 「감정적 혼돈기」라고 한다면 증언 이후 현재까지를 「정서적 안정기」라고 할 수 있다.
전씨 내외는 초창기 하루 3 4차례의 예불과 불교서적 탐독으로 불심을 키우며 울적한 감정을 잊으려고 노력하는 한편 찾아오는 측근및 신도들과 한담을 통해 여유를 찾기도 했다.
이 기간중 부인 이순자씨가 「명예회복」을 해야겠다고 분노를 표시하면 전씨는 『태풍이 몰아올 때 태풍을 대항해 이기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니 침묵하고 있으라』고 감정표출의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는 전씨도 백담사에 온 직후 한동안은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5공 당시 측근이었던 일부 인사들에 대한 인간적 배신감에 감정을 폭발시키기도 했다는 것.
이럴 때는 부인 이씨가 『모든 것이 내탓이오』라고 불교의 「자비」를 들어 마음을 누그러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 내외는 김도후 백담사 주지등 불교계 인사들의 권유로 대통령 재임시 죽은 영가들을 천도시키는 백일기도를 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고 측근들은 전하고 있다. 하루 3번씩의 예불에는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을 위한 속죄와 참회의 기도와 나라발전 기원 및 노태우 대통령이 슬기롭게 국가를 이끌어 나가기를 기원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전씨는 그 당시 측근들을 통해 불도에 심취해 있다는 「근황」과는 달리 청와대등 여권 핵심부에 강한 불만과 강도 높은 비판을 해왔다. 즉 백담사로 떠날 때 『몇달간 기다리면 해결될 것』이라고 한 「약속」이 지켜지기는 커녕 자신을 찾아온 군 고위인사가 「불이익」을 당했다는 점,5공 청산문제가 점점 「미궁」으로 빠져 결국 자신을 국회증언대에 내세우려는 조짐 등,노대통령이 자신을 「홀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불편한 심기를 노출해 왔다.
당시 백담사 캠프는 내심 국회증언에 반대하면서도 『여야가 합의하는 대로 따르겠다. 허심탄회하게 모든 내용을 밝히겠다』는 원칙론만 제시했었다.
전씨 측근들은 이때 최규하 전대통령 진영과 의원직 사퇴 압력을 받고 있던 정호용씨 진영의 서명파와 3각「연합전선」을 구축하기까지 했다.
결국 정호용씨가 의원직 사퇴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증언을 거부했던 백담사측은 대세의 흐름에 밀려 지난해 연말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회증언대에 서게 됐다.
○…비록 「미완의 증언」으로 끝나긴 했지만 자신의 국회증언으로 5공청산의 정치적 「족쇄」에서 벗어난 전씨는 증언 이후 「홀가분해졌다」는 자신의 심경 표현처럼 하루 1천∼2천명의 신도들에게 설법을 하는 등 운신의 폭이 넓어진 셈이다. 백담사측은 적절한 시기(내년 봄)에 하산을 추진하겠다는 의중이나 정국추이 및 국민감정 등을 감안,시기선택에 고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씨측은 하루 빨리 정치권에서 「전씨문제」가 잊혀져 가기를 바라며 「망각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연말 전씨 증언을 전후해 백담사측과 청와대간에 「핫라인」이 개설돼 간혹 노대통령이 전씨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교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측은 그동안 직간접으로 은둔생활을 「청산」하고 정상적인 시민생활로 돌아오도록 권유했으나 전씨 자신이 「역사와 국민에 대한 정리시간이 필요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측은 하산을 하더라도 서울 근교등 제3의 장소를 거처로 제시하고 있으나 전씨측은 「연희동사저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를 뒤집어 보면 「연희동 귀환」이 어렵다면 당분간 백담사에서 더 머물겠다는 것이 하산시기와 맞물린 전씨측의 복안이다.
여권 핵심부는 이달말께 고위인사를 백담사로 보내 하산시기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아무튼 전씨의 「백담사 2년」은 「권력의 생리」와 「인간적인 의리」간의 겉과 속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사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 것만은 분명하다.<조명구기자>조명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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