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 상공회의소가 작성,미 의회 등 요로에 배포했다가 한국측으로부터 「내정간섭」이라는 반발을 샀던 「한국 보호주의 실체들」이란 제목의 보고서가 담고 있는 내용의 상당부분이 실상에 접근한 것일 수가 있다. 한국정부가 지난해 5월 종합무역법안의 슈퍼301조협상을 타결한 뒤부터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미국측의 비난도 이해할 만하다. 또 침체일로에 있는 미국경제가 페만사태를 계기로 불황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 어려운 사정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그러나 최근 미국정부가 의회,업계,언론의 협조와 지원을 등에 업보 대한 시장개방을 촉구하는 총공세를 펴기 시작한 것은 통상현안을 원만하게 타결할 수 있는 방안이 되기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윽박지른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두부모 자르듯이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한미간의 통상마찰에서 갈등요인을 안고 있는 쪽은 솔직히 말해 미국이 아니라 한국 쪽이다. 미국 쪽에 문제가 있다면,그것은 아마도 한국을 보는 미국의 시각에 관한 것이 될 것이다.
한국은 나라의 위기를 국민 전체가 본능적으로 수용하는 방어본능의 생존문화를 가진 나라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외침 등 수난을 당해왔기 때문인지 몰라도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간에 외세의 진출이 두드러지면 약속이나 한 듯 위기의식이 전국에 확산되는 민감한 사회이다. 그 방어본능이 충격을 받으면 저항의지로 바뀌기도 한다. 예컨대 통상압력과 관련된 반미감정의 고조는 그런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강국인 미국의 국민은 그러한 심리구조를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섬나라로서 온건하게 국토를 보존해온 일본도 한국과 그점에서 다르다. 미국이 한국을 「제2의 일본」으로 간주한다면 본질파악에서부터 잘못 시작하는 셈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국내외에서 「봉노릇」을 잘 하는 일부 한국인의 소비성향을 보고 만만한 고객들이라고 본다면 그역시 피상적인 관찰이다. 동질성의 추구가 그 어느 민족보다도 강하기 때문에 소수의 과소비는 다수의 위기의식 앞에서 일단은 고개를 숙이게 마련이다. 과소비추방운동이 관주도가 아니냐고 보는 것은 그래서 한국사회의 심층을 정확하게 진단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가 없다.
지금 한국국민의 정치의식과 심리는 정부가 하라고 하면 오히려 반대로 갈 경계수위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언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원해도 들을 입장에 있지 않다. 언론통제를 일삼던 권위주의체제가 지난 뒤 비판을 앞세운 언론자유를 상대적으로 더 구사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5천년 역사 속에서 처음 잘사는 나라가 돼가고 있다. 그러나 경제발전이 전성기에도 가보기 전에 쇠퇴기로 들어간 듯한 조짐 투성이다. 그래서 한국국민은 이러다가 다시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냐고 과민해져 있는 시점이다.
더구나 정치가 그나마의 비전을 제시해주지도 못 해 불만이 쌓이고 있으며,농정실패와 농산물 개방압력으로 농촌의 분위기는 아주 나쁘다.
이점 또한 세계정상의 경제력과 저력을 갖춘 일본과 한국이 근본적으로 형편이 다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같은 문화권의 이웃간으로 공통점이 많은 것이 한·일 양국인만큼,미국이 일본시장을 상대하면서 익힌 통상압력의 수단과 방법을 구사할 수 있으며,이에 대해 의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과는 또다르게 다루기 힘든 특성을 지녔음을 정확하게 인식해주기 바란다.
미국은 단기간내에 시장을 개방시키기 위해 힘을 행사하려는 유혹을 자제하고 한국국민의 납득이 가능한 접근책을 우선활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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