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당의 정창화 국회농수산위원장이 20일의 첫 상임위운영 도중 「폭언」을 했다 해서 평민당이 발끈,불안한 하루살이 국회를 더욱 뒤뚱거리게 하고 있다. 추곡수매 문제 등 정부측의 현황보고를 우선 듣자는 평민당과 합의된 의사일정대로 예산안상정을 먼저 하자는 민자당이 티격태격하던 중 정 위원장이 『…나갈테면 또 나가보지…』라고 말한 게 「화근」.이에 평민 의원들이 거칠게 항의,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진 데 이어 21일에도 『공정한 의사진행의 책임과 본분을 망각한 방자한 태도』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반면 정 위원장은 『19일 밤 여야간에 의사일정을 합의해놓고 20일 아침 당회의에 갔다온 후 태도를 돌변하니 이래서야 어떻게 회의를 운영하느냐』고 푸념을 털어놓고 있다. 국민들의 정치감정이 이젠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조차 지쳐 있는 현실에서 정상화된 국회의 참주소를 읽게 한 이 「사건」을 보며 또 하나 생각나는 게 있다.
지난 18일 저녁 민자당 수뇌부의 청와대 만찬회동에서 농반진반으로 오고갔다는 한 토막.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대표의 지난번 당무거부 및 마산행을 떠올리며 『또 도망갈거요. 이젠 나가지 마시오』라고 말해 참석자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전혀 별개인 두 사건이 문득 오버랩되는 유일한 끈은 국회로부터의 「가출」과 당으로부터의 「가출」이 전후 사정의 배경이 돼 있다는 점이다. 또 우연히도 양자는 가출이란 투쟁수단으로 복귀의 명분을 상당수 거뒀으며 이것이 다시금 국회와 민자당의 정상궤도 진입을 가져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는 이런 연상을 하면서 또 당장의 농수산위사건을 보면서 갖는 의문은 좀 다른 곳에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정치판이 가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고 가출해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소모적 과정을 거치면서 피차가 「만성 가출불감증」에 걸려 있지 않느냐는 점이다. 혹시라도 자신들이 무대에서 펼치는 「파행협상정상화」의 거듭되는 지루한 드라마를 보면서 객석의 국민들이 울고,웃고 감동하리라는 착각을 갖고 있지 않느냐는 느낌도 받게 된다.
하지만 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당사자가 국민이 아니라 정치인 자신들임을 깨닫고 있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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