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외상인생」 자본부족국선 악덕미국의 어느 항공회사가 처음으로 미국과 서울을 연결하는 항공노선을 개설할 때 있었던 일화이다. 이 항공회사에서는 탑승객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하여 승무원들로 하여금 제복에 흰꽃을 꽂고 서비스를 하도록 하였다. 또한 탑승객들에게 식사를 내놓으면서도 쟁반에 흰꽃 한송이씩을 올려 놓았다. 그러나 이와 같이 나름대로 최선의 서비스를 하려는 의도였는데도 불구하고 얼마 후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제일 먼저 나온 이야기가 흰꽃 서비스를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는 흰꽃을 장례식에서나 쓰는 것인데 비행기 탈 때마다 승무원들이 흰꽃을 꽂고 서비스를 하니 오히려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었다.
이는 서로 다른 생활문화권에 속해 있는 국가나 기업이 외국에서 경제활동을 할 때 상대방의 생활습관이나 방식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야기되는 현상이다. 즉 한편에서는 자기들 나름대로 최선의 서비스를 한다고 하였으나 상대편에서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기분이 나쁘게 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과소비억제운동에 대한 한 미간 마찰의 원인도 이러한 맥락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이란 곳은 소비문화가 세계에서 최고로 발달되어 있는 나라이다. 한 예로 미국에서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여 월급이 정해지게 되면 그때부터 기업들이 그 사람을 공략하여 자연스럽게 무엇이든지 외상으로 구입하여 생활하도록 되어 있다.
즉 자동차를 살 때도 가격의 10%만 처음에 내고 나머지는 월부불입을 하게 되고 세탁기와 냉장고도 외상으로 구입하여 시간이 가면서 갚아 나간다. 마찬가지로 신혼부부가 결혼하여 집을 살 때에도 5천불(우리돈으로 약 3백50만원)만 있으면 5만불짜리 저택을 구입하여 들어가서 살 수 있다. 이러한 소비생활은 집이나 가구뿐만 아니라 여가생활에도 반영이 되어 여행사의 광고중에는 「지금 날아가고,돈은 나중에 내십시오」하는 문구도 있다.
이와 같이 미국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현재는 수입이 적더라도 앞으로 벌 수 있는 금액을 생각하여 소비생활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정착되어 있다. 이는 결국 집이건 가구이건 외상으로 구입하여 수입이 있는대로 빚을 갚아야 하는 과정이 은퇴할 때까지 계속되는 일종의 외상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사람들에게 이런 소비생활이 가능한 것은 미국 사회에 자본이 풍부하고 남아 돌아가기 때문이다. 즉 미국 경제에는 산업생산에 투자할 돈은 물론이려니와 소비자 금융을 위해서도 돈이 충분히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앞으로 수입이 있을 것 같으면 먼저 소비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고도로 발달된 소비문화 속에서 생활하여 온 미국인들의 눈에 우리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과소비억제운동이 수입을 제한하고 자유무역을 방해하려는 의도로 비쳐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자본이 부족한 국가로 산업생산에 필요한 자본마저도 외국에서 들여와야 하는 형편이다. 더욱이 소비자 금융까지는 아직 생각할 여유가 없는 단계이고 보니 일반 국민에게 은행문은 높은 문턱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집이나 가구를 장만하는 경우 각자가 저축한 것에서 지불해야만 한다. 한 예로 일반 국민이 5천만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같이 할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금 5천만원 전액이 자기의 저축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국민의 저축률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것도 이런 연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 생활속에는 지난 몇년간 가계수입이 급증함에 따라 눈에 띄게 소비가 늘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 전체에서 이러한 소비급증이 과소비가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게 되어 소비를 억제하고 절약하려는 운동이 자연 발생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오늘의 절약을 통하여 내일의 보다 나은 생활을 추구하자는 국민의 자발적 운동이며,우리의 경제단계에서는 가장 시의 적절한 것이라 하겠다.
우리는 아직 자본부족국가로 저축을 통하여 산업자금을 동원하여야 하고,우리에게는 소비금융할 돈이 없으니,각자가 저축하여 집을 사야하는 단계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우리 국민에게 미국과 같이 월급받은 만큼 소비하라고 한다면 앞으로 당분간은 모두가 흥청망청 잘 쓸지 모르지만 국가적으로는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하게 되고,개인적으로는 자기 집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그들의 생활관습이나 소비생활의 관점에서 무조건 우리의 과소비억제운동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서부개척 초기의 청교도처럼 절약하고 근검하게 살아 보자는 우리의 생활운동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국민들도 최근 몇년간 소득이 급격히 늘었다고는 하지만 오늘의 절약만이 내일의 풍요를 보장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과소비억제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