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서 들리는 소리『무슨 소립니까. 그래도 5공화국때가 지금보다야 훨씬 좋았죠. 지금은 도대체 서민이 살 수가 없어요』 뭣때문에 떼지어 백담사에 갔다가 참사를 당했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더니 택시운전사 아저씨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전두환씨 때가 훨씬 좋았다」는 것이다.
「세상 인심 조석변」이라더니 2년반전 천하를 뒤덮었던 항의와 분노의 함성은 까마득한 과거로 사라졌다. 백담사에서 23일이면 「은둔 두돌」을 맞는 전씨도 올 들어서는 줄곧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보도다.
매일 수십대의 관광버스로 백담사를 찾는 관광객 삼사천명에게 「설법」하느라 바쁘다고 했다. 30분에서 한시간씩,많을 때에는 하루 열차례 넘게 설법을 한다니까 「은둔생활」이라고 할 수는 없을 정도다. 더구나 삼사천명과 악수하고 기념촬영까지 한다니까 백담사에 5공화국이 부활했다고 할만할지도 모른다.
흰 두루마기 차림의 전씨는 지금도 「믿었던 사람에게 당했다」는 배신감의 분노를 「지난일」로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는 으레 「모든 것을 업보로 생각한다」는 불교도다운 설명이 붙는다.
「믿었던 사람」이 누구고,무엇을 어떻게 배신당했다는 것인지 딱 잘라 어리석은 백성이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그는 아직도 울화가 치밀었노라고 계속 말하고,또 백담사에까지 오게 된 것이 「업보」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업보」 때문이라면 전생의 업보란 말일까? 그렇다면 5공화국때 잘못은 없는데,전생의 업보 때문에 백담사에 왔다는 말일까? 울화가 치밀었노라고 「지난일」을 되풀이 말하는 것은 지금도 믿었던 사람에게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은 아닐까?
○세상은 거꾸로
아닌게 아니라 「그때가 좋았다」는 사람을 나무라기도 어렵게쯤 됐다. 국회의원이 전과 12범의 폭력조직 두목 석방운동에 가담하고,전과기록이 빠진채 「초범」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기획원의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이 3억원을 부정대출 받아 땅투기를 했다면,정부가 약속한 「공정거래」를 믿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토지개발공사 간부가 땅투기로 수십억을 벌었다는 혐의를 받고,공무원이 개발계획을 빼돌려 돈을 벌었다니 국고열쇠를 도둑에게 맡긴 것과 같다.
「바르게살기운동」 위원장의 부인이 손님의 예금통장을 훔쳐 2천만원 돈을 빼 쓰다 쇠고랑을 차고,「청소년 선도위원」이 기업형 술집을 경영하면서 10대 소녀들을 접대부로 고용해서 윤락행위를 시키는 판이니 세상이 거꾸로 선 셈이다.
「민주화」라는 구호로 출발한 정치도 민주화와는 거리가 아직도 멀다. 반대여론에는 아예 귀를 막고 독단적으로 추석을 연휴로,그리고 음력설을 부활한 정부가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재벌들의 비판에 허둥대고 있다. 노조와 재벌 틈새에서 줄일 수도 그대로 둘 수도 없는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33초 사이에 26개 안건을 날치기 통과시키고,물러나겠다던 방송공사 사장님은 얼굴에 철판을 깐듯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범죄와 「전쟁」까지 치른다는 판에 일가족 네명을 생매장하고,얼굴 없는 화성군의 연쇄살인범은 경찰을 비웃는듯 아홉번째 살인을 저질렀다. 차라리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던들 체면이나 구기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또 여론에 귀를 막고 민간상업방송의 간판을 내걸게 했다.
○여론에 귀막은 6공
애초에 날치기 통과된 새 방송법을 바탕으로,공개토론 없이 만든 방송제도연구위의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은채,방송구조개편안을 내놓고,밀실에서 쉬쉬 심사해서 한 건설업자를 실질적인 소유주로 방송사를 만들었다.
멋대로 남의 목을 자르고,멋대로 통폐합을 한 5공화국을 청산하겠다고 2년여전에 공약한 6공화국이었다. 그 6공화국이 국민이 볼세라 알세라 전국인구의 절반 가까운 수도권과 충청일부를 커버하는 「거대방송」을 만들어 냈다.
여론과 의논도 하지 않고 안면도에 핵폐기물 중간처리장을 만들려다 홍역을 치른 일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여론에 귀를 막고 추석연휴·음력설 공휴로 곤경에 빠진 기억을 잊지 않는게 좋다.
아니 5공화국을 뒤흔든 항의의 함성을 잊어선 안된다. 「그때가 좋았다」는 볼멘 소리를 치욕으로 아는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그때가 지금보다는 나았다」는 백성들에게,5공화국을 왜 청산해야 하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물가가 뛰고 범죄는 날뛰어도,앞으로 물가를 잡고 복지를 향상시켜 범죄도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국민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란 「전생의 업보」가 아니라,바로 현실의 업보임을 정치를 한다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이다.
아니 그 무엇보다도 국민이 깨어있지 않다면 「민주화」의 약속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돈봉투 받고 표를 찍는 어리석은 백성에게는 영원히 주권자로서의 권리가 회복되지도,민주화의 약속이 익은 감처럼 떨어지지도 않을 것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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