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 “이몽”… 입법화 때 충돌소지/여 「장」 선거는 당정간에도 갈등 심해 주목/야 예산안과 연계 “실시 굳히기” 원내 투쟁여야가 17일 지자제 실시를 위한 기본원칙들에 합의함으로써 민자당의 법안 날치기 처리로 표류하던 국회는 4개월 만에 정상화의 계기를 맞게 됐다.
여야는 극한대립을 거듭해 오던 그간의 정국 파행과정에서 정국복원의 숨통을 트는 데 나름대로 부담을 느껴왔던 것이 사실. 민자당이 정기국회를 개회한 뒤에도 단독 운영을 가급적 피해온 것이나,평민당이 이날의 합의에서 기초자치단체의 정당공천 배제에 완전히 「백기」를 들게 된 점이 이런 배경을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이날의 여야 합의는 「야당의원 유인」이라는 여측의 의도와 「지자제 실시의 교두보 확보」라는 야측의 계산이 접합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이날 합의문이 「지방자치선거법은 회기내에 최우선으로 처리한다」고 밝혔듯이 여야는 이제부터 지자제 관련 부수법안 마련을 위해 곧 후속협상에 착수할 예정이다. 여야는 이외에도 내각제개헌 포기문제와 관련,다소 애매하긴 하지만 「13대 국회중에는 거론하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평민의 요구를 충족시켰으며 나머지 등원조건에 대해서도 「묵은 감정」을 털어냈다.
그러나 국회가 19일부터 정상화된다 해도 지자제 후속 협상추이나 예산안을 비롯,국정감사 등 회기운영에 있어서는 파고가 높게 일 것이란 전망이다. 이번 협상의 막바지 과정에서 민자당이 드러냈던 「강경자세」에 대해 평민당이 이날의 합의와 동시에 『오만하고 도발적』이라고 원색비난을 가하고 나선 것을 봐도 향후 정국이 맞을 파란의 고비를 예고하고 있다. 이같은 평민당의 불만은 지자제의 기본원칙 합의에 임박해 여권내에서 강력히 고개를 든 제동기류가 앞으로 지자제자체의 운명에까지 간단치 않게 작용할 소지가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
사실 협상타결이 임박해 가면서 나타난 지난 이틀간 여권의 동태로 미루어 선거법안 마련과정이 격심한 진통을 수반하리란 예측은 어렵지 않다. 지난 16일과 17일 청와대 안기부 내무부 및 민자당측이 참석한 고위 당정회의는 정부측과 충분한 사전 협의없이 지자제 전면실시의 합의를 해준 당측에 대해 정부측의 강력한 불만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측은 특히 자치단체장선거가 92년 상반기에 전면 실시될 경우 행정의 전문성 및 일관성 차질 등 행정 전반에 적지 않은 부작용이 초래된다고 우려,부단체장만큼은 중앙정부의 임명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측의 문제제기는 자치단체장선거는 어떻게 해서라도 대통령선거 후로 미뤄야 한다는 여권내의 견해를 대변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관련,김윤환 민자당 총무는 『내무부가 지자제 실시에 기피증세를 보이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말해 지자제에 대한 여권 내부의 「강경론」이 여전히 만만치 않음을 시사했다.
당정회의에서는 또 매년 각급선거가 잇달아 치러지게 됨으로써 이에 따른 경제 사회적 혼란에 대한 우려도 심각하게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반영하 듯 당정의 협상파와 강경파는 뒤늦게 자치단체장선거시기를 대선 후로 미루는 문제를 놓고 총무회담을 하루 연기해 가면서까지 실랑이를 벌였다는 후문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평민당측이 기초단체 정당공천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던 여권이 의외로 협상속도가 빨라지자 당황했던 흔적으로 여겨지는 대목. 그러나 이보다도 기왕에 지자제 실시를 외면하지 못할바에야 대선에서 유지할 수 있는 집권여당의 프리미엄을 가능한 한 야당측에 넘겨줄 수 없다는 기본입장을 말해 주는 것이다.
자치단체장선거의 구체일정과 관련,민자당이 14대 총선 이후로 미루고 싶어하는 내심을 협상타결 전후하여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가 하면,자치단체장선거가 지방의회선거 후 1년 이내에 실시된다는 점을 들어 단체장선거법은 다음 기회에서 다룰 복안을 갖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을 말해 주고 있다. 즉,「선 총선 후 단체장선거」의 이같은 구도는 30년 만에 부활되는 지자제선거 양상을 여권 나름대로 「검증」해볼 필요가 있는데다,오는 14대 총선결과가 정치판을 새로 구축할 가능성 등 「상황변수」를 최대한 활용할 심산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런 저간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그간 민자 평민 양당 총무간에 유지해 오던 기본합의의 「정신」이 문서화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상대적으로 국민여론에 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는 당측의 설득이 우세했던 결과라고 여겨진다.
지자제 실시 약속이 번번이 위약으로 그친 전례들에 비추어 이번의 합의성사 여부는 노태우 대통령의 공약이행이라는 관점에서 더욱 주시를 받았던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지난 16일 내무부 장관과 경제부처 장관들이 노 대통령을 집단방문,지자제 실시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강력히 개진했으나,바로 이어 협상주역인 김윤환 원내총무가 청와대를 방문,협상결과를 보고한 후 노 대통령으로부터 『공약인만큼 반드시 합의를 성사시키도록 하라』고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지자제선거법 문제만 해도 지방의회선거법과 단체장선거법을 단일 입법으로 하자는 평민측 주장과,분리입법하려는 민자측 복안이 엇갈리고 있고,평민당이 후속 협상을 예산안과 연계시킬 방침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회기내에 입법화까지에는 숱한 곡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조재용 기자>조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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