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상 냉전체제가 변화없이 굳어져 있는 동북아에도 그것을 허물어뜨릴 가능성을 겨냥한 외교활동이 점차 두드러져 가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어쩌면 최초의 공식적인 움직임은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교환방문이 될 것이다.12월 중순 노 대통령의 모스크바방문,그리고 내년 4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서울방문은 그 자체로 볼 때에는 최근 약 2년 동안 진행돼온 한국과 소련의 수교작업을 마무리짓는 최종적 외교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88년 서울올림픽으로 시작된 서울모스크바 관계는 지난 9월말 수교협정 조인으로 일단 공식절차는 끝났다. 두 나라 정상의 교환방문은 말하자면 공식절차를 실질적인 협력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한 의례적인 절차가 될 것이다.
우리는 흔히 한국과 소련의 관계가 한국의 정치적 필요와 소련의 경제적 필요가 결합된 관계로 보고 있다. 그동안 수교협상 과정에서 두 나라가 보인 입장과 태도에서도 충분히 인정된 일이었다. 그러나 두 나라의 대통령이 서로 교환방문할 만큼 국교관계가 새로운 현실로 떠오른 지금 우리는 두 나라의 국교관계가 갖는 의미를 보다 종합적이고 긴 눈으로 정리할 때가 왔다고 본다.
먼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소련이 「경제협력」을 우선적으로 앞세우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소련의 한반도정책은 세계적인 탈냉전정책의 한 가닥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원칙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앞으로의 두 나라 관계에서 우리측이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30억달러 규모의 경제협력이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협력 자체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ㆍ개방정책이 빚어낸 결과요,이념 대결을 포기하고 「교차교류ㆍ교차승인」으로 방향을 바꾼 결과다. 그만큼 소련에게는 정치적 의미가 압도적으로 큰 결정이었다.
소련이 동북아에서 무엇을 생각하는가 하는 것은 이미 몇 차례에 걸쳐 밝혀진 바 있다. 그것은 새로운 아시아 안보체제 구성에 이니셔티브를 취함으로써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의 유력한 구성원으로 참여하자는 것이다. 올 들어서도 지난 9월초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오는 93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시아지역 외무장관회담을 열자고 제의했었다.
소련이 이념대결을 포기하고,아시아라는 국제정치 무대에 발을 들여놓자면 그 첫 관문은 한국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이러한 소련의 움직임이 한반도의 긴장완화,그리고 한 걸음 나아가 한반도의 재통합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우리는 기대하고 있다.
두 나라 대통령의 교환방문은 거대한 세계적 흐름의 한 가닥이요,우리에게는 새로운 기회인 동시에 새로운 과업의 등장을 뜻한다.
서두르지 말고,종합적이고 긴 안목을 가지고 새로운 흐름에 적응ㆍ발전할 정신적 준비가 필요하다. 또 행여 이 역사적인 흐름을 당리당략이나 장삿속의 장식물로 삼는 일이 있어서도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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