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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본 변혁의 현장/동구의 겉과 속: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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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본 변혁의 현장/동구의 겉과 속:중

입력
1990.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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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건노선 하벨 과격파서도 존경/화해지향 「사쿠라」 안몰려/도덕적 권위로 믿음 심어/동독인들 급속통일에 아직도 놀란 표정지금 체코에서 가장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 있다면,그는 하벨 대통령이다. 단순한 최고 정치지도자가 아니라,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팝히어로(pop hero)이기도 하다. 그는 스탈린식 체제하에서 77헌장운동을 주도했던 재야지도자 중 한사람이었다.

정치적 저항을 하기 보다는 문화운동을 통해 비교적 조용하게 비판운동을 해온 극작가요,철학자이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온건한 반정부세력 가운데서도 문예활동을 주로하는 탈정치적이지만 비판적인 작가라 하겠다. 그와 함께 77헌장에 서명했다가 대학강단에서 축출당했던 트로얀 박사는 지금 명문 찰스대학교 신학대학 학장으로 있는데 그와 한나절 토론회를 가졌다.

그는 작년 11월 민주혁명을 주도했던 학생들이 스탈린체제를 무너뜨린 공헌을 높이 찬양하면서도,그들의 반스탈린 운동이 갑자기 그 정반대 방향으로 치닫게되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였다.

그 자신 77헌장에 서명하고 그 운동에 가담했던 것은 기존의 억압적 국가사회주의를 인간적인 사회주의로 변혁시킴으로써 올곧은 사회주의이상을 구현해 보려던 것인데,변혁의 시계추는 한 극에서 다른 극으로 내닫고 있어 걱정이라고 하였다. 젊은이들이 후사크치하의 억압을 증오한 나머지 사회주의체제는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지 수용할 수 없다는데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우려였다.

이제는 민주화가 진척되고 있는데도 그들이 그렇게 바랐던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가 또다시 하나의 꿈으로 남아있게 된 현실을 트로얀 학장같은 지식인들은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다.

스탈린 체제하에서 한낱 꿈으로만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인간적 사회주의가 민주변혁의 과정에서도 젊은이들의 반사회주의 성향으로 인해 또다시 꿈의 영역으로 쫓겨나고 있으니,그들의 안타까움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우리가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 프라하에서는 1975년 체결했던 헬싱키협약의 준수를 위한 후속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35개국 대표들이 유럽의 안보와 협력문제를 논의하고 있었고 거기서 6개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그중의 하나인 인권위원회의 상임위원으로 피선된 온드라박사가 우리와 함께 이틀동안 유익한 토의를 진행시켜 주었다. 이번 35개국 회의는 프라하에 유럽내 시민운동본부를 두기로 가결하였다고 한다.

유럽의 경제중심지가 브뤼셀이라면,정치중심지는 유럽의회가 위치하고 있는 스트라스부르일 것이고,인권 및 민권신장을 위한 시민운동의 중심지는 이제 프라하가 된 셈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번도 제대로 정치와 역사의 봄을 활짝 꽃피우지 못했던 불운의 도시 프라하의 시민들은 그들이 그토록 바랐던 프라하의 봄을 이제 막 만끽하게 되었다.

동독을 향해 체코를 떠나면서 우리는 지난 1주일 내내 하벨 대통령의 인간적인 매력과 소탈하고 소박한 지도력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기에,마치 정든 고향을 떠나는 아쉬움을 느꼈다.

하벨은 올해 노벨평화상을 놓고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던 사람인데,그는 정치적 온건노선을 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과격한 젊은 운동권도 그를 존경한다고 했다. 체코식 5공청산인 후사크정권 비리를 척결함에 있어 하벨은 온건하고 화해 지향적 정책을 취하고 있지만,누구도 그를 「사쿠라」로 정죄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중도세력일수록 도덕적 권위를 지녀야 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도덕적 설득력 없는 지도자는 감히 중도노선을 택할 엄두를 내기 어렵다. 「사쿠라」로 매도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혁명 직후 상황에서는 그러하다. 그런데 하벨은 과격 급진세력조차도 승복할 수 있는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흐뭇한 믿음의 정치를 해내고 있다. 그는 대통령선거때 「진실과 사랑은 거짓과 증오를 이겨낸다」를 선거구호로 삼아 그때까지 후사크의 거짓 정치,증오의 정치,강압의 정치에 시달려온 국민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고,마침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총체적 불신과 경멸을 받고 있는 우리네 정치지도자들과 견주어 너무나 다른 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가슴은 쓰렸다.

10월26일 체코 항공편으로 동베를린에 도착했다.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동독지역에는 전화통신이 잘되지 않았다. 동서독이 통일은 되었는데 통화가 잘 안된다는 사실이 독일통일의 오늘의 한 단면이다.

동베를린 에르푸르트 그리고 라이프치히에서 민주혁명에 앞장섰던 교회지도자들과 간담회를 다섯 차례 가졌다. 그들의 증언에 따르면,동독의 민주화도 예상밖의 일이었거니와 동서독의 통일이 이렇게 빨리 이뤄지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 스스로 크게 놀랐을뿐 아니라 아직까지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먼저 여행자유화를 외치며 동독에서 서구로 탈출했던 젊은이들로 인해 반세기 가까이 굳게 뿌리내렸던 스탈린식 사회주의체제가 구약의 느브가넷살왕의 꿈속에 나타난 신상처럼 맥없이 무너져 버리게 된 것인데 그 누구도 이같은 급작스러운 붕괴를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민주혁명이 통일을 이렇게 빨리 성취시켜 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작년 이맘때 동서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브란덴부르크문이 열렸을 때만해도 완전한 독일통일은 수년에 걸쳐 일어나리라 짐작했는데 1년도 채 되지 않은 지난 10월3일에 독일은 공식적으로 통일되었던 것이다.<한완상 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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